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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4400만명분 ‘부풀린 희망’…청와대의 세가지 실책

등록 2020-12-24 04:59수정 2020-12-24 10:20

❶ 불확실한 백신 선구매 결단 못하고
❷ 국산치료제 개발 독려에 더 힘쏟아
❸ 마스크 대란 겪고도 사전대응 실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5부요인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차를 마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5부요인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차를 마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가 코로나19 백신 도입에 늑장 대응했다는 비판에 연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부터 백신·치료제 개발 및 물량 확보를 13번이나 지시했다는 내용을 공개한 청와대는 23일에도 ‘백신 티에프에서 청와대가 손 뗐다’는 한 언론 보도를 공개 반박했다. 사실관계가 다르거나 과한 비판과 의혹 제기가 많은 점을 고려하더라도, 청와대의 이런 대응이 불안해진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손에 쥔 백신이 없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던 것일까.

① 제도·예산 미비, 결국 청와대가 결단했어야

정부는 그동안 백신 협상·확보 과정의 어려움을 거듭 설명해왔다. 화이자·모더나 등 다국적 제약사가 백신 개발에 실패하거나 백신 부작용이 나타나더라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조건을 요구해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한다. 백신 개발 제약사가 ‘갑’인 상황에서 선구매를 하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금액에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한국에선 이런 불확실함을 감내하며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법적 근거와 예산이 없었다는 것이다. 국회는 내년 정부 예산안을 통과시킬때 야당의 요구로 백신 예산을 추가한 바 있다.

여권 관계자는 “법과 예산이 없으니 결국 청와대가 사령탑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즉, 청와대가 이런 제도적 한계를 먼저 인식하고 불확실한 백신이더라도 전략적으로 다양하게 구매하는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는 아쉬움이다. 각 부처가 ‘뒷감당’을 꺼려 망설일 때 결국 최종 책임을 지는 ‘컨트롤타워’ 구실을 할 수 있는 곳은 청와대뿐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일찌감치 코로나19의 겨울철 대유행 가능성을 경고하고 백신이 이른바 ‘게임 체인저’라고 주장했던 점도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최원석 고려대 교수(감염내과)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코로나로 생기는 커다란 사회 경제적 피해에 견줘 백신 비용을 과감히 쓰고 일단 확보해놓는 것이 오히려 불확실성을 낮추는 것이였다”고 말했다.

② ‘케이(K) 방역’ 기대감 크다 보니…

여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지침을 강조하는 한편 국산 치료제 개발을 독려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고 한다. 치료제가 나오면 효과적으로 감염병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에스케이(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치료제 개발도 빠른 성과를 보이고 있다”며 “셀트리온은 항체 치료제를 개발하며 임상 마지막 단계인 2상과 3상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고, 지씨(GC)녹십자가 개발한 혈장치료제도 임상 2상에 진입해 올해 안에 환자 치료에 상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른바 ‘케이 방역’과 함께 ‘케이 바이오’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셈이다. ‘케이 바이오’는 치료제를 국내에서 개발해 많은 수출을 하자는 비전에 가깝다.

그러나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치료제보다는 백신이 감염병 종식에 훨씬 효과적이라고 본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보건정책 전문가는 “백신은 예방책이지만 치료제는 이미 감염된 환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의료진 인력과 병상 확보 등 사회적 비용이 계속 투입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즉 코로나19 확산을 멈추고 고통스러운 사회적 거리두기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백신 확보라는 우선적인 목표를 더 분명히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에스케이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해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에스케이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해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③ 마스크 대란과 닮았지만, 더 뼈아플 수도

이번 백신 논란은 지난 2월 ‘마스크 대란’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문 대통령은 국민들이 마스크를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자,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국민들에게 구입이 가능하다고 알리면 어떻게 하냐’고 참모진을 강하게 질책했다. 백신 확보도 비슷한 양상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 지시 뒤) 백신 4400만명분 확보로 이어졌다. 아직 더 (계약할 물량이) 남았고, 속도를 당기고 물량을 더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질책하니 서둘러 수습에 나선 셈이데, 사태가 닥쳐서야 사전 예측과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는 게 드러나는 모양새가 열달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마스크 부족은 정부의 적극적인 생산 독려로 단시간에 혼란을 진정시킬 수 있었지만, 백신은 채근한다고 쉽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청와대가 더 뼈아프게 생각해야 할 지점이다. 이완 최하얀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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