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9시 국군 장교가 대북 직통연락선 전화로 조선인민군 연락관과 통화하고 있다. 이날 남북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직통연락선과 동·서해지구 군통신선을 복구해 남북 군사당국 간 유선통화, 문서교환용 팩스 송·수신 등을 재개했다. 국방부 제공
남북 직통연락선이 55일 만에 다시 가동됐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14기 5차 회의 시정연설(9월29일)에서 “10월 초부터 북남 통신연락선들을 복원”하겠다고 밝힌 지 닷새 만이다. 지난해 6월 이른바 ‘대북전단 사태’를 이유로 북쪽이 직통연락선을 끊고(6월9일)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6월16일)한 뒤로 1년 4개월 가까이 수렁을 헤매온 남북관계를 풀어갈 ‘첫 디딤돌’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해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는 등 한반도 평화 과정의 재가동 동력을 마련해야 할 어려운 과제가 정부 앞에 놓였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4일 “김정은 동지의 뜻을 받들어 해당 기관들에서는 4일 (오전) 9시부터 모든 북남 통신연락선들을 복원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사 보도” 형식의 발표였다. 통일부와 국방부는 이날 오전과 오후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와 동·서해지구 군통신선의 개시·마감 통화가 정상적으로 이뤄져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남북 직통연락선은 지난해 6월9일 이른바 ‘대북전단 사태’ 와중에 북쪽의 일방적 조처로 끊겼으나,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친서 교환을 계기로 정전협정 기념일인 지난 7월27일, 단절 413일 만에 복원됐다. 그러나 가동 열나흘 만인 지난 8월10일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비난한 ‘김여정 담화’ 발표 직후 그날 오후 마감 통화 때부터 북쪽이 통화에 응답하지 않아 ‘불통’ 상태가 지속돼왔다.
북쪽은 직통선 복원 발표문을 통해 “남조선 당국은 북남 통신연락선의 재가동 의미를 깊이 새기고 북남관계를 수습하며 밝은 전도를 열어나가는 데서 선결돼야 할 중대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쪽이 강조한 “선결 중대과제들”은 두 갈래로 짚어볼 수 있다. 원칙적으론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시정연설에서 “불변한 요구”라고 강조한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중적 태도, 적대시 관점·정책 철회”를 가리킨다. 남쪽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포괄하는 ‘원칙·전략 요구’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밝힌 “북남관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서 나서는 원칙적 문제들”을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으로, 근본문제부터 해결 자세, 북남선언 성실 이행”의 3개항 요구가 그것이다. ‘이중기준·적대정책 철회’보다 실마리와 접점을 찾기가 상대적으로 덜 어려운 요구다.
둘을 하나로 묶으면, 북쪽이 ‘남북 먼저, 북미 나중’으로 기조를 조정했으니 남쪽이 미국을 설득해 ‘제재 완화’ 등 비핵화와 맞물릴 상응조처를 이끌어내달라는 ‘요청’으로 읽힌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지난달 25일 담화에서 “종전이 때를 잃지 않고 선언되는 것, 북남공동연락사무소의 재설치, 북남 수뇌상봉(정상회담)”과 관련한 “건설적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남쪽이 대미 설득에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이 서야 북쪽의 ‘행동’으로 이어질 듯하다.
통일부는 남북 직통연락선 재가동으로 “한반도 정세 안정과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남북 간 통신연락선의 안정적 운영을 통해 조속히 대화를 재개해 남북 합의 이행 등 남북관계 회복 문제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실질적 논의를 시작하고, 이를 진전시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남북 군사당국간 군통신선 복구 조처가 앞으로 한반도의 실질적 군사적 긴장완화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많은 주문과 기대가 담긴 공식 반응인데, 한 줄로 줄이면 ‘직통선 복원을 당국 대화로 이어가자’는 얘기다. 오는 10일 노동당 창건 76돌 기념행사가 북쪽의 ‘전략적 군사행동’ 없이 무사히 넘어간다면, 대화 물꼬를 트려는 남과 북의 탐색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북쪽이 지난 여름 남북 직통선을 복원 14일 만에 끊은 데다 이번에 “선결 중대과제”를 앞세운 점을 들어 북쪽이 언제든 직통선을 끊고 표변할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러 정황에 비춰 이번엔 북쪽이 지난 여름처럼 복원 며칠 만에 다시 단절하는 ‘변덕’은 부리지 않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식 연설에서 직접 한 약속의 이행인데다, <노동신문> 보도로 일반 인민들한테도 알렸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북쪽이 지난 7월27일 통신선을 복원했을 때와, 8월10일 다시 일방적으로 통화에 불응했을 때는 관련 사실을 <노동신문>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노동신문> 보도를 기준으로 보자면,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대북 전단을 이유로 남북 직통선을 끊은 지난해 6월9일의 정세 인식과 대남 조처의 ‘일단 종료’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런 셈법이라면, 남북 직통선 복원은 ‘단절 55일 만’이 아니라 ‘단절 482일 만’일 수 있다. 북쪽의 남북 직통선 복원 조처의 배경을 좀더 긴 시간 흐름 속에서 살펴야 하는 까닭이다. 아울러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한테 보낸 축전에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 수호”라는 표현을, 이태 만에 처음으로 쓴 사실도 이런 맥락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제훈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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