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드리언 루이스 미국 캔자스대학 역사학과 교수가 지난 8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한미일-북중러 신냉전 구도,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에이드리언 루이스(Adrian Lewis·70) 교수는 미국 캔자스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저명한 군사전략 사상가다. 그는 저서 ‘미국 전쟁 문화:2차 대전부터 이라크전쟁까지 미군의 역사’(2017)에서 압도적 화력을 지닌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까지 왜 거의 모든 전쟁에서 패했느냐는 이유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전쟁 전문 학자다.
인천시 주최 국제 평화컨퍼런스에 참석한 루이스 교수를 만나 최근 신냉전 구도, 우크라이나 전쟁, 한반도 전략, 그리고 핵무기 사용 가능성 등에 대해 두루 질문을 던졌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될 것이며, 이로 인해 한미일-북중러 신냉전 구도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국 정부에 대해 한-미 동맹은 중요하지만, 언제든 정치 상황이 바뀔 수도 있는 미국에 자국의 안보를 온전히 맡길 수 없다며,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균형 잡힌 결정’과 ‘또 하나의 방안’을 늘 함께 준비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영관장교 출신으로 미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고, 1970년대에는 사병으로 주한미군에 근무하기도 했다. 부인과 딸도 미군 출신으로 한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는 “우리 가족 모두 한국 상황에 늘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8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진행됐다.
―먼저 현안부터 여쭤보겠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다. 무기 거래를 논의하며, 위성·핵미사일 협력 확대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향후 북-러 관계,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나?
“북한과 러시아는 총탄 등 무기 기종이나 체계 등에서 같은 종류의 것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해야 되고, 북한은 국가안보를 위해 러시아가 필요해 양쪽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도 (직접 뛰어들어 3국 군사협력 관계로까지 나아가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북-러가 가까워지는 것을 지원할 것이다.”
―북한이 전술핵공격잠수함을 건조했다는 뉴스도 동시에 나왔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이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는 것을 비판할 순 있지만, 북한이 스스로 비핵화를 결정해 핵을 포기하는 것은 북한 입장에선 ‘미친(crazy) 짓’이다. 북한은 핵무기뿐 아니라, 운반수단(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갖춰 이미 샌프란시스코, 뉴욕에 대한 핵공격이 가능하다. 핵공격에는 ICBM과 SLBM 등 2가지 방식이 있는데, 아직은 북한의 전술핵공격잠수함 성능을 높게 평가할 수 없다 하더라도, 북한이 두 가지 능력을 다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앞으로 6개월~1년 안에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핵무기가 완성될 것으로 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하기 위해 지난 10일 오후 전용열차로 평양을 출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에 올라 인사하는 장면. 연합뉴스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 이후,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인상을 받는다.
“그동안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해왔던 시진핑도 (한미일-북중러 대립 구도 강화로 인해) 이젠 북한의 핵보유를 지지할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군비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콜롬비아급 잠수함, B21 스텔스 폭격기, 러시아도 핵무기 탑재 극초음파 미사일 등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한국은 이런 다극주의 강대국에 둘러쌓여 있다. 미국이 한쪽 편을 들라고 강요하더라도 이를 맹목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다. 기억할 것은 한국은 주권국이란 사실이다. 균형(balance)을 갖춘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을 안다.”
―한국에서는 보수정부든 진보정부든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경우는 없다. 다만 중국과의 관계를 얼마나 신경 쓰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을 통해 국가안보를 보장받고, 대중 관계도 한-미 동맹 강화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을 잘 들었다. 지난 4월 워싱턴 선언에서도 알 수 있듯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에 국가안보의 많은 것을 의존하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자국의 안보를 동맹에 온전히 의존하는 것은 최근 세계 각국의 외교안보 전략 접근법은 아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켜준다고 약속하고선, 나중에 전황이 불리해지자 철수했다. 미래에 미군 철군과 같은 상황이 오는 것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한-미 동맹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예측이 불가능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한국이 국가안보에서 독자적 투입(input) 없이 미국에 모든 걸 의존하는 것은 온당치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미국을 온전히 믿지 마라. 심각한 실수(grave mistake)가 될 수도 있다. 미국과의 관계는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문도 늘 열어놓아야 한다. 초강대국이 개별 국가의 안보를 대리해주는 시대는 1950년대가 마지막이었다. 자국의 안보를 다른 나라에 맡길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끝날 것으로 예측하나? 애초 전쟁 발발 당시에는 러시아가 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됐었다.
“먼저 짚어야 할 점은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7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러시아 침공 이후 빼앗긴 영토 가운데 50%를 탈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 나머지 50%는 탈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수만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났지만, 푸틴은 이 전쟁을 빨리 끝내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수세에 몰렸던) 러시아의 공세로 돌아갈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현재보다) 영토를 더 잃게 될 공산이 크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수 없다. 만일 중국이 멕시코와 군사동맹을 맺는다면,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한번 상상해 보라. 미국 정부도, 국민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는 러시아에도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 초기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가 원인이 되었다며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일부 있긴 했지만, 이후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가 극심해지면서 그런 시각보다는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책임을 묻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전쟁의 1차적 출발점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라고 본다. 베를린 장벽 붕괴(1989년 11월) 이후인 1990년 2월, 미국은 독일 통일에 대한 소련의 협력을 요구하면서 나토를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2004년 발트 3국의 나토 가입 등 나토가 점점 러시아 쪽으로 확장됐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러시아가 예민할 수밖에 없다. 미국 미디어의 우크라이나 관련 보도를 좀더 주의 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국 미디어에는 푸틴은 깡패, 그리고 미국이 인류를 구원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내년 미국 대선 전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매듭짓고 이를 성과로 내세워 대선을 치르려 한다는 예상이 있었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전쟁이 진행되지 않으리라 본다. 아무리 수많은 돈을 퍼부어도 우크라이나 상황을 크게 바꾸진 못할 것이다. 전쟁은 장기전이 될 것이고, 미국도 끝낼 능력이 없다. 러시아 경제제재도 실패했다. 오히려 러시아로부터 가스 등 원자재를 수입해 온 유럽이 더 고통받고 있다. 독일의 올해 성장률이 1%로 떨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브릭스 국가의 탈달러화, 러시아-중국 밀착 등의 역풍도 불러일으켰다. 미국의 대러시아 경제제재는 점점 미국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나? 우크라이나 관련 무기거래에 대해 미국이 북한에 경고한 것처럼, 러시아도 한국의 탄환 지원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미국은 이제 북한에 아무런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 경고는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과 다르다.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탄환 등 살상무기를 지원하거나 거래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 생각한다. 인도주의적 지원에 국한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지난 10일(현지시각) 새벽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드론으로 공격한 이후 민간 시설 근처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현재의 신냉전 구도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나?
“전세계가 전쟁으로 치닫는 게 아닌가, 암흑의 시대가 오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 각국이 한쪽 진영에 속해 일방적으로 한쪽 편만 들면서 국방예산을 계속 늘리고 있다. 특히 위험한 건 미·중·러 등 강대국의 핵무기 개발 일변도다. 과거 냉전 때에는 미국과 소련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등도 있었는데, 이젠 이런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이 군비를 늘리는 만큼, 중국도 러시아도 군사비를 계속 증강하고 있다.
1950년 미국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고 68호’(NSC-68)라는 정책문서를 작성했다. 소련의 전세계적인 공산적화를 막기 위해 미국 국방비를 3~4배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미국은 압도적인 전세계 최대 군사대국이 되었다.(미국의 연간 군사비는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나머지 2~10위 군사비 지출국가를 모두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앞으로도 당분간 전세계 어느 나라도 미국에 필적할 만한 군사력을 갖추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중국이 도전하고 있지만, 미국이 한가롭게 내버려둘 것 같진 않다.
미국은 전쟁하는 나라다. 지난 200년 역사에서 단 16년만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지금도 전시 상황이다. 최대 무기 생산국이자, 최대 무기 수출국이다. 미국은 매년 국방예산에 8천억달러(2024 회계연도 8420억달러) 이상을 쓴다. 미국에게 전쟁은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미국 외교·국방 기조인 ‘NSC-68’을 볼 때, 앞으로도 절대 ‘평화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한국에서 영화 ‘오펜하이머’가 큰 인기를 끌었다. 전쟁이 전면전(total war)이 아닌 제한전(limited war)이 될 수밖에 없는 주요한 원인이 핵무기 때문이라고 본다. 2차 대전 이후, 실제 전쟁에서 핵무기가 사용된 적은 없다. 앞으로도 이 원칙은 계속 지켜질 수 있다고 보나?
“오늘 인터뷰의 핵심이다. 현대전의 중요한 기점이 한국전쟁이다. 인위적 제한전의 시초였기 때문이다. 한국전 당시 중국의 개입으로, 미군은 역사상 최대의 후퇴를 했다. 그래서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핵무기를 사용하라는 압박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나 트루먼은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인위적 제한전이 생겨난 순간이다.
지고 있고, 후퇴하고 있는 전쟁에서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건 어려운 결정이다. 영화 <오펜하이머>에도 나오듯 트루먼은 2차대전에서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했고, 그 때문에 전쟁을 조기에 끝냈다. 그러나 한국전쟁에선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에 대해 트루먼은 존경받아야 한다. 하지만 당시 그 결정으로 트루먼의 정치적 커리어는 끝났다.
당시 한국전에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기적이다. 한국전에서 사용하지 않았기에 베트남전에서도 그 기조가 유지될 수 있었다. 전쟁사에서 한국전이 베트남전보다 더 중요한 게 이 때문이다. 트루먼 이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소련이 공격할 경우 미국의 대규모 핵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대량 보복전략’ 개념을 미국 안보 독트린의 핵심으로 내세웠지만,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기조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전략폭격기, ICBM, SLBM 등은 3대 핵전력(트라이애드)이다. 또 메가톤급 핵무기 개발이 계속되고 있다. 지구를 날려버릴 수준이다. 그래서 핵무기 보유국 간에는 ‘존재론적 위협’에까지는 이르지 않으려고 서로 노력해왔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시절,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있었으나 서로 존재론적 위협까진 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존재론적 위협으로 느끼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어, 대만 해협 위기를 중국은 존재론적 위협으로 보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왼쪽)과 해리 트루먼 대통령(오른쪽). 1951년 중공군 개입 이후, 맥아더 장군은 만주로 전장을 확대할 것을 요구했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맥아더는 만주에 원자폭탄 투하까지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쟁중인 1951년 트루먼은 유엔군총사령관인 맥아더를 해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무기가 사용될 가능성은 없나?
“현재는 러시아가 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만일 패전을 우려할 정도라면, (전략핵무기가 아닌)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1950년대 말 이후, 미국 네브래스카주에 있는 ICBM ‘미니트맨-3’의 탄두에는 목표 지점이 모스크바로 표시돼 있다. 러시아에도 워싱턴, 뉴욕을 탄두에 새겨넣은 ICBM이 배치돼 있을 것이다. 이처럼 대도시를 향한 전략핵무기 사용은 공멸이다. 그러나 군대나 군사지역을 타깃으로 하는 소형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본다.
만일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몰린다면, 우크라이나 내부에서의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문제는 만일 전술핵무기가 사용된다면, 그다음 단계로 또 선을 넘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푸틴 모두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권태호 논설위원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