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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힘센 형님 뒤 숨은 조무래기”…외교력까지 쪼그라든다

등록 2014-11-04 20:10수정 2014-11-04 20:23

지난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5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해 오울렛 초소에서 망원경으로 북쪽을 보고 있다. 왼쪽부터 제임스 서먼 주한미군사령관, 오바마 대통령, 정승조 합동참모본부 의장, 에드워드 테일러 유엔사 경비대대장.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5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해 오울렛 초소에서 망원경으로 북쪽을 보고 있다. 왼쪽부터 제임스 서먼 주한미군사령관, 오바마 대통령, 정승조 합동참모본부 의장, 에드워드 테일러 유엔사 경비대대장.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전작권포기 흔들리는 군사주권] ② 위협받는 ‘외교 주권’
군사력과 외교력 상당 부분 비례
“자기 나라 군대도 통제 못한다
주변국들이 속으로 우릴 얕볼 것”
“참담했다. 우리 능력으로 싸워 나라를 지키겠다는 군인의 기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골목에서 힘센 형님 뒤에 숨기만 하는 조무래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23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무기한 연기 결정 과정을 들여다본 한 외교관의 심경 토로다. 사실상의 ‘군사주권’ 포기 상황을 지켜보며 품었을 울분과 격정이 배어났다.

40대의 직업 외교관인 그는 군사주권의 핵심인 전작권 포기가 몰고올 군사안보적 파장 너머 외교안보 참사 가능성에도 냉정한 눈길을 보냈다. “한 나라의 군사적 힘과 단호한 의지는 외교 역량을 발휘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기반이다. 그런데 우리는 군이 먼저 알아서 외교관보다 더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그는 “주권 포기를 눈뜨고 방조한 책임에서 나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부끄럽지만 언론의 제대로 된 평가와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거꾸로 돌아가는 국면을 되돌릴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전작권 환수 재연기 결정이 군사주권은 물론 ‘외교주권’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번져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의 위험성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경고하고 있다.

‘강한 외교력은 그 나라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기초한다’는 국제정치의 보편 원리와도 이번 결정이 어긋난다는 지적이 가장 먼저 나온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경구는 국내정치뿐 아니라 국제정치에도 적용된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차가운 힘의 논리가 통용되는 외교 관계에선 군사력이 상당 부분 외교력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 통제권의 고갱이인 전작권 환수 기회를 차버림으로써 정부 스스로 외교 역량과 운신의 폭을 줄였다는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군사주권이 넘어가면 국가 운영이 힘들어지고, 외교적으로도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전작권을 계속 행사하게 된 미국과의 관계에선 계속 외교적으로도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게 됐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주변국들도 ‘자기 나라 군대도 통제하지 못하는 나라’라며 우리를 속으로 깔볼 것”이라며 “겉으로야 대화는 하겠지만, 제대로 된 외교 상대로 존중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번 결정은 미-중 사이 패권경쟁 구도에 한국이 알아서 걸어들어간 중대한 패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미는 이번에 언제가 될지 모를 전작권 환수 조건의 하나로 ‘한반도 및 역내 안보 환경 안정화’를 내걸었다. 북한의 침공에 대비한 한-미 동맹의 군사 지휘체계 전환의 문제를 한반도 이외의 ‘역내 안보’와 연계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은 전작권 재연기 합의 직후 ‘한반도 바깥 역내 상황과 전작권 환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연결하는 해상교통로가 무력분쟁에 휩싸인다면 한반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주게 된다. 이 상황에서 그래도 전작권 전환을 할 것이냐, 이것이 하나의 예다.”

남·동중국해에선 중국이 일본, 필리핀, 베트남 등과 영토 갈등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맞서 일본·필리핀 등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남·동중국해는 한국과는 직접적인 안보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다. 그런데 이번 합의는 한-미 동맹의 범위를 대북 억제 차원을 넘어,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 구축과 직결시키는 빌미를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끼어들지 말아야 할 두 강대국 간 갈등 구도에 휘말릴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줬다”며 “고래 사이에 낀 새우 신세를 자초할 수 있는 외교적 일대 패착”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가뜩이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의 평택 배치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터다. 중국은 대북 미사일 탐지 반경을 훨씬 뛰어넘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 여부를 미국의 중국 봉쇄 구도에 한국이 협력하는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바라보고 있다. 전작권 환수 재연기와 역내 안보를 연계시킴으로써 한국에 대한 중국의 눈초리가 한층 매서워지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 이번에 전작권 재연기와 더불어 한·미·일 군사 정보공유 방안의 지속 협의에도 합의해줬다. 한·미·일 3국간 ‘미사일 탐지 정보’ 공유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 때 가장 필수적인 군사적 공조 방안으로 꼽힌다. 문정인 교수는 “한-미 동맹이 미-일 동맹과 결합해 한묶음으로 중국을 겨냥한다는 느낌이 강해질수록 한-중 관계는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는 한국 경제엔 직격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한-미-일 공조 강화는 이밖에도 각각 작전권을 가진 동등한 성격의 미-일 동맹에 작전권 없는 한국이 하위 파트너로 참여하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작권 ‘포기’는 평화협정 논의 등 남북관계에도 부정적 파장을 던지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세현 전 장관은 “북한은 1984년 미-북 평화협정과 남북 불가침 문제를 남-북-미 3자회담에서 논의하자고 해놓고도 ‘군사실권을 가진 미국과 먼저 얘기하고 나서 남측과도 할 얘기가 있으니 방청은 해도 좋다’는 식이었다”며 “전작권이 없다는 이유로 남한은 북한한테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돌이켰다. 송민순 전 장관은 “북한이 대남 무시 전략을 계속할 명분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준 것이니 참 황당한 노릇”이라고 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왼쪽)과 한민구 국방장관이 지난달 23일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국방부 청사(펜타곤)에서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를 열어 한국의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결정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알링턴/AFP 연합뉴스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왼쪽)과 한민구 국방장관이 지난달 23일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국방부 청사(펜타곤)에서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를 열어 한국의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결정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알링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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