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31일 러시아 <타스> 통신이 찍은 평양 시내 거리의 택시들. 평양/타스 연합뉴스
“인민들이 낡아빠진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며 불편을 느끼도록 하고 거리에는 택시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늘 마음이 무거웠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8월 평양무궤도전차공장과 버스수리공장, 송산궤도전차사업소를 현지지도하다 한 말이다(<노동신문> 2018년 8월4일치 1·2면). <노동신문>이 전한 김 위원장의 발언은 이례적으로 직설적이다.
국영인 평양의 무궤도전차 요금은 북한돈으로 5원이다. 5원은 “길에 버려도 되는 돈처럼 싸다”(평양 출신 20대 탈북민). 반면 사실상 사영인 택시는 기본요금이 2달러다. 500m마다 49센트(0.49달러)가 더 붙는다. 1달러는 공식 환율로는 북한돈 100~110원 정도지만 시장 환율은 8천원 안팎이다. 택시 기본요금이면 무궤도전차를 3200번 탈 수 있다. 현기증 나는 격차다. 김 위원장이 새로 만든 (무)궤도전차를 보고 “오늘은 하늘의 별이라도 딴 듯이 기분이 들뜬다”고 환호작약한 까닭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들은 가다가 다리가 아프면 택시를 탔다”고 평양 출신 20대 탈북민은 아무렇지 않게 회고한다. 그는 평양에 있을 때 손전화 3대를 지니고 장사로 돈 좀 만진 머리 좋은 청년이다. 하지만 북녘의 대다수 도시 밖 거주 인민들한테 택시라는 탈것은 자신들과 아무 상관 없는 안드로메다 이야기다.
평양의 대중교통 수요는 10개 노선 78㎞에 이르는 무궤도전차망을 근간으로 궤도전차 4개 노선(평양역~만경대, 낙랑~문수, 평양역~서평양, 송신~대동교), 지하철 2개 노선(천리마선·혁신선), 시내버스 33~36개 노선이 떠받친다. 300만명이 넘는 평양시민의 교통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라고 경직됐다. 이런 국영 교통수단은 요금이 북한돈 5원이지만 “줄이 엄청 길다. 그래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은 개인 버스를 탄다”(평양 출신 20대 남성). ‘써비차’(서비스차의 줄임말) 또는 ‘벌이버스’라 불리는 개인 운영 10~30인승 소형 버스다. 출퇴근 시간에만 무궤도전차 노선과 같은 코스를 운행하는데, 요금은 훨씬 비싸다. 기관·기업소의 이름을 빌려 버스를 운행하는 실소유주 가운데 일부는 아예 운전사·차장을 직접 고용하고 주유와 수리도 알아서 한다. ‘중소 자본가’에 가깝다. 북녘에서 개인의 타인 노동 고용은 불법이다. 그런데도 최근 몇년 사이 이런 사례가 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무궤도전차공장과 버스수리공장을 시찰하며 신형 무궤도전차 등을 살펴봤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8월4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현재 평양에는 최대 6천대 안팎의 택시가 운행되리라 추정된다(김연철 통일부 장관, 3월26일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 2000년대 후반 수십대로 출발해 2016년 3월 1500대(중국 <신화망>)였던 데 비하면 가파른 상승세다. ‘려명’(내각 소속), ‘케이케이지’(KKG·군부 소속), ‘고려항공’(고려항공사 운영) 따위의 브랜드를 단 택시회사가 5~6개에 이른다. 평양 택시 운영 주체는 겉으론 내각·군부·국영기업 등이다. 실제론 자기 돈으로 택시를 사서 회사 소속으로 등록한 뒤 직접 운전해 납입금을 뺀 나머지를 챙기는 개인도 있다고 한다. 남녘의 ‘지입택시’와 유사하다.
북한은 애초 집과 일터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는 ‘직주근접’ 원칙에 따라 공간을 구획하고 사회를 조직했다. 그만큼 교통 수요가 적었다. 아울러 철도를 주축으로 삼아 버스가 보조하는 ‘주철종도’ 원칙에 따라 교통정책을 펼쳐왔다. 버스는 애초 30㎞ 안쪽만 운행하다 1980년대 이후 200~300㎞ 거리의 도시간 운행도 일부 맡아왔다. 2010년대엔 평성~청진 간 700㎞ 장거리 노선을 운행하는 시외버스도 등장했다. 입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평양의 관문도시이자 유통 중심지인 평성시의 시외버스터미널엔 전국 주요 도시를 잇는 50개 안팎의 노선이 운영된다. 사실상 전국 교통망이다. 이 시외버스 노선의 실제 운영자들은 ‘돈 많은 개인’이다. 형식상 인민보안성 산하인 ‘운림운송합영회사’도 평양과 신의주·함흥 등 전국 주요 도시를 잇는 장거리 버스 노선을 운영하는데, 국가의 승인 아래 베이징운수회사와 북녘의 개인 자본 투자로 설립·운영된다.
‘직주근접’과 ‘주철종도’라는 사회 조직 원리를 뿌리부터 흔드는 힘은 ‘고난의 행군’ 시기의 부산물인 급속한 시장화다. 원거리 교통망의 핵심인 기차는 싼값에 대량 운송이 가능하지만 치명적 약점이 있다. 기차는 “너무 느리다”. 쌀·석탄처럼 상거래와 지역간 운송이 원천 금지된 상품은 기차에 실을 수 없다. 청진 수남시장에서 평성 옥전시장까지 10t 컨테이너 차량으로 물품을 실어나르는 데 운송비가 1000달러나 드는데도 수요가 몰리는 까닭이다. 이런 차량도 대부분 개인이 실소유주이지만 명목상 기관 소속이다.
시장화는 “집과 일터만 오가던 인민의 진자운동식 교통수요를 산지사방으로 퍼지는 브라운운동으로 질적 전환을 일으켰다”(안병민 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브라운운동은 액체·기체 속 미소입자의 불규칙 운동으로, 담배연기나 물에 떨어뜨린 잉크의 확산을 연상하면 된다. 무엇보다 ‘더 빠르게 어디든 갈 수 있는 운송수단’에 대한 선호의 확산은 “시간이 곧 돈”이라는, 북녘에선 낯선 ‘자본주의적 관념’의 확산과 맞물려 있다. 특히 택시 이용자의 출현·확산은 “일심단결”을 생명선으로 여겨온 집체사회인 북녘에 새 주체, 곧 ‘개인’의 출현을 예고한다.
이제훈 노지원 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