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일 강원도 원산 호도반도 일대에서 진행된 화력타격훈련에서 단거리 발사체가 발사되는 모습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다. 조선중앙티브이 연합뉴스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참관하는 가운데 동해상으로 ‘단거리 발사체’ 여러 발을 쏘는 화력타격훈련을 실시했다. 북-미 간 교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저강도 압박’을 높이는 모양새다.
<조선중앙통신>(이하 <중통>)은 5일 “(김정은 위원장이) 5월4일 조선 동해 해상에서 진행된 전연(전방) 및 동부전선 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밝혔다. 또 훈련이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 전술유도무기 운영 능력과 화력 임무 수행 정확성, 무장 장비들의 전투적 성능을 판정 검열”하고 “경상적인(변함없이 항상 일정한) 전투 동원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중통>은 “그 어떤 세력이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 우리의 생존권을 해치려 든다면 추호의 용납도 없이 즉시적인 반격을 가할” 훈련이었다고 전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 무산 이후 사실상 첫 ‘무력시위’를 벌인 북한의 계산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빅딜’을 요구하며 제재 압박을 지속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셈법 변화’ 촉구와 더불어 북한이 ‘새로운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시사해 미국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달 ‘비핵화 협상 실패 땐 경로 변경’을 경고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 “미국은 참으로 원치 않는 결과를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날을 세운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발언의 연장선에 있다.
동시에 북한은 미국이나 유엔의 강력한 맞대응을 초래할 수 있는 행동들은 피하면서 압박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합동참모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4일 오전 북한이 강원도 원산 호도반도 일대에서 쏜 단거리 발사체들은 최소 70㎞에서 최대 240㎞를 비행했다. 미국 본토에 대한 직접 위협 가능성이 없는 단거리 발사체들이고, 탄도미사일이라고 해도 단거리여서 유엔의 대응을 부를 가능성이 크지 않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정체 속에서 충격을 줘야 판이 움직이니까 저강도로 (미국에) 자극을 주자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의 대북 협상 실무를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방한(9~10일)을 앞두고 ‘압박’과 일종의 ‘대화 신호’를 함께 보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달 22일부터 진행된 한·미 연합 공중훈련에 대한 대응 성격도 엿보인다. 매해 진행했던 대규모 공중훈련인 ‘맥스 선더’를 대체해 실시 중인 이 훈련을 두고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지난달 25일 ‘9·19 군사합의’의 “노골적인 위반행위”라고 하는 등 최근 들어 한·미 연합훈련을 둘러싼 북쪽 비난 수위가 올라간 바 있다. 북한이 이번 훈련을 “경상적”이라고 표현한 것도, 한·미가 규모를 축소했지만 일상적·방어적 차원이라며 연합훈련을 지속하고 있는 데 대한 반응이자 명분 쌓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밖에도 남쪽을 사정거리에 둔 ‘단거리 발사체’의 사거리에 비춰볼 때,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에 소극적이라는 북한의 불만이 들어 있는 대남 메시지라는 풀이도 있다. 북한이 이전과 달리 훈련 사진을 20장 이상 공개해 ‘대외적 카드’로서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대내적으로도 ‘체제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선전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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