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4일 북한과의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예선 3차전을 위해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타러 가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꿈★은 이루어진다”는 붉은악마의 열정에 찬 응원은 언감생심이고, 생중계도 현장 취재 기자도 없다. 15일 오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치러질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남북 남자 축구대표 경기다. 남북 남자 축구대표의 평양 경기는 1990년 10월22일 통일축구 이후 29년 만.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기는 프로야구지만, 국가대표 경기로 한정하면 남자 축구, 특히 월드컵의 인기를 따를 경기가 없다. ‘월드컵 축구’는 지구촌 여느 나라처럼 한국에서도 시민들의 압도적 관심사다. 하여 생중계 없는 경기는 당혹스럽다. 분단 71년 상처에 소금이 뿌려진 듯 아프다.
북한 쪽의 공식 방침은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라 다른 나라와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쪽이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국제 규정과 북쪽 관례에 따르겠다는 논리다. 북쪽은 9월5일 레바논과의 평양 예선전도 생중계 없이 치렀다. 대체로 체육 경기를 생중계하지 않는 관례에 따라 이튿날 <조선중앙텔레비전>으로 녹화 중계했다.
북쪽 방침은 ‘국제 규정 위반’은 아니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중계권은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있지만, 1·2차 예선은 주최국에 있어서다.
북쪽의 15일 평양 경기 대응에 남북관계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보긴 어렵다. 북한축구협회는 7일 대한축구협회에 남쪽 대표단 55명(선수단 25명 포함)의 방북 초청장을 보내면서, 생중계·현지취재 등 문제는 “권한 밖”이라며 “(남북) 당국 협의 사항”이라고 알려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정점으로 한 조선노동당 수뇌부의 결정에 달린 문제라는 얘기다.
북쪽은,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등을 활용한 남쪽 당국의 “(생중계·현지취재 등) 편의 보장 요청”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관련해 남쪽의 지상파 3사가 일본의 중계인을 끼고 북쪽과 협상을 벌여, 거액의 중계료를 전제로 생중계를 하는 쪽으로 실무선에선 공감이 이뤄졌다고 한다. 그런데 ‘상부’가 승인하지 않아 무산됐다는 후문이다.
이는 한-미 합동군사연습과 첨단무기 도입 등을 이유로 남쪽을 맹비난하며 문재인 정부의 ‘정책 전환’을 압박해온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15일 평양 경기에 대한 냉랭한 태도로, 문재인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교착국면 타개를 촉구하는 남쪽 여론을 촉발하려는 계산이 깔렸을 수 있다.
하지만 ‘생중계 없는 월드컵 예선’은 남쪽 시민들 사이에 ‘김정은은 뭔가 다르다 여겼는데 결국 다른 게 없다’는 부정적 인식을 퍼뜨릴 가능성이 상당하다. 북쪽이 의도했든 안 했든, 월드컵 축구 경기의 ‘정치화’는 남쪽 시민의 대북 인식을 더 악화시켜 문재인 정부의 화해협력 정책 추진 기반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북쪽이 남쪽에 와서 치를 방문경기는 내년 6월4일 예정인데, 그땐 오늘의 아픈 기억이 반면교사로 남북 모두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약속한 2032 여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추진의 밑돌을 놓을 수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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