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혁명수비대가 8일(현지시각) 미군이 주둔한 이라크 아인알아사드 공군기지를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이 이란 국영방송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이란 국영텔레비전 방송 화면 갈무리/EPA 연합뉴스
이란이 8일(현지시각) 이라크의 미군 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가한 직후 미국의 반격에 가담하는 나라도 표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서,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검토하고 있는 정부의 고민이 한층 깊어지게 됐다. 상황이 악화할 경우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해협 연합방위에 참여하는 나라들도 이란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외교부는 이날 오후 긴급 대책회의를 여는 등 중동의 전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미군 기지를 공격한 직후 낸 성명에서 미국의 반격에 가담하는 미국의 우방과 미군 기지가 있는 제3국도 표적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이스라엘 텔아비브와 하이파를 후보로 거명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선 우리 아크부대(150명 규모)가 현지 특수부대 교육을 지원하고 있고, 이스라엘과 접한 레바논에는 동명부대(350명 규모)가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고 있다.
이란의 미사일 능력은 중동 지역에서 최강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한 보고서에서 이란이 중동 지역은 물론, 멀리 터키와 이집트, 인도까지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보고서는 “이란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공군력이 열세이기 때문에 미사일 중심으로 군사력을 구축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무엇보다 중동 지역에 거주하는 우리 국민 안전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군은 유사시 이들을 보호하고 수송하기 위한 장비 소요를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라크에 1570여명, 이란에 290여명, 이스라엘에 700여명의 국민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외교부는 파악하고 있다. 전운이 짙어지고 있는 있는 이라크에 체류 중인 국민들은 대부분 카르발라 정유공장, 비스마야 신도시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사 직원들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아직 철수를 고려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8일 오후 이란과 이라크 등 중동 지역 공관장들과 대책 논의를 위한 화상회의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7일 <한국방송>(KBS)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도 중동에서 많은 에너지 자원을 얻고 있다”며 “한국이 그곳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한-미 국방장관 회담 등 여러 계기를 통해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요구했으나 이처럼 공개적으로 파병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파병 요구가 급박한 정책 목표가 됐음을 뜻한다. 미국으로선 이란에 맞서 국제연대를 과시하고, 중동 지역에서의 무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한층 커졌다. 일각에선 한국의 파병에 앞서 주한미군 병력이나 장비가 중동 지역으로 차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의 파병 요구가 급박해지면서 정부의 선택도 압박을 받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진전에 의욕을 보인 터라 미국이 이를 호르무즈 파병과 연계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참석하는 8일 한·미·일 3국 안보 고위급 협의에서도 북한 문제와 함께 파병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는 다음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강경화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회담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강문 선임기자, 김소연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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