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부대 31진 왕건함, 호르무즈해협으로 파견 부산/연합뉴스
정부가 21일 청해부대의 작전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결정함으로써 베트남전 이후 처음으로 우리 전투부대가 분쟁지역에 투입되게 됐다. 우리 군은 현재 레바논, 남수단 등 12개 나라에 파견돼 있지만, 모두 평화 유지나 재건, 교육을 위한 지원임무를 맡고 있다. 2003년 이라크에 파병했을 때도 전투부대는 아니었다. 정부의 이번 결정이 ‘위험한 선택’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의 선택은 동맹국인 미국의 요구와 주요 교역국인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한 고육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한-미 동맹과 이란과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현실적인 방안’을 찾겠다고 언급한 것을 상기시킨다.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호위연합체인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이란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청해부대의 작전범위를 호르무즈해협 안쪽까지 확대함으로써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모양새다.
미국은 지난해 여름부터 ‘호르무즈해협 안전을 위한 국제적인 연대’를 강조하며 한국의 파병을 요구했다. 지난 1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중동 정세를 설명하며 요구의 강도를 높였다. 미국이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았으나 한국이 국제해양안보구상에 참여하길 희망한 것으로 읽혔다.
정부는 한때 국제해양안보구상 참여까지를 포함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미국이 이달 초 이란군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제거하고, 이에 맞서 이란이 이라크의 미군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군 관계자는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인 일본이 이미 호르무즈해협 독자 파병을 결정한 상황에서 정부도 마냥 결정을 미룰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우리가 이란의 적이 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번 독자 파병 결정은 사실상 예정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부의 이번 결정이 일정 부분 미국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라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관계 진전 구상과 방위비 분담금 협상 타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관측한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최근 문재인 정부의 남북협력 구상에 제재의 잣대를 들이대며 미국과의 협의를 강조한 바 있다. 국내적으론 미국의 요구에 따른 파병의 정당성과 청해부대의 작전범위 확대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 여부를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청해부대의 작전범위는 아덴만 일대에서 오만만과 아라비아만(페르시아만) 일대까지 확대됐다. 작전범위가 지금보다 3.5배로 늘어난 셈이다. 군을 이를 위해 지난해 7월 이후 호르무즈해협과 가까운 오만의 무스카트항을 청해부대의 주력 기항지로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전범위가 너무 넓어 동시다발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청해부대가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한다고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호위연합체와 협력이 불가피하다. 오만만에서 아라비아만으로 들어가려면 사실상 이란군이 통제하고 있는 호르무즈해협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청해부대 소속 연락장교 파병은 그런 협력을 동원하기 위한 고리라고 할 수 있다. 군 관계자는 “청해부대의 능력을 벗어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호위연합체와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청해부대가 호르무즈해협 일대에서 우리 군의 지휘 아래 한국 선박만을 호송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대세력의 공격 징후 등 위협 요소가 식별되면 합참에서 청해부대를 지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다른 나라도 호르무즈해협에서 자국 선박만을 호송한다”며 “청해부대는 주어진 능력과 제한사항 안에서만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청해부대가 호르무즈해협에서 공격을 받을 경우 자위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어 무력 분쟁의 소용돌이로 말려들어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해부대를 태운 왕건함(4400t급)은 지난달 부산해군작전사령부를 떠나면서 어뢰와 음파탐지기 등 대잠무기를 한층 보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호르무즈해협에서 예상되는 여러 상황을 반영한 대응지침을 마련한 상태”라고 말했다.
정부는 청해부대의 작전범위 확대를 ‘한시적’이라고 강조했으나 언제까지라고 시한을 못박지는 않았다. 파병 기간에 사실상 제한을 두지 않은 셈이다. 파병 종료 여부에 대한 정부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공산이 그만큼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 완화 등 정세 변화가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