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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호르무즈 파병, 이라크 때보다 잠재 위협 높은데 ‘국회 패싱’

등록 2020-01-22 18:53수정 2020-01-23 02:30

[노무현정부 때 파병과 뭐가 다를까]

두 파병 모두 미 요구로 촉발됐지만
정부 “파병과 한-미 현안은 별개”
자이툰부대는 평화재건 임무 맡아
청해부대는 첨단 구축함 전투부대
이라크 파병, 국회 동의 험난한 과정
정부, 청해부대는 동의 불필요 입장
전쟁없는세상 등 파병에 반대하는 89개 단체 관계자들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정부에 호르무즈 파병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호르무즈 단독파병 결정은 헌법에 명시된 국회 동의권을 무시하고 한국 선밥과 교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쟁없는세상 등 파병에 반대하는 89개 단체 관계자들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정부에 호르무즈 파병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호르무즈 단독파병 결정은 헌법에 명시된 국회 동의권을 무시하고 한국 선밥과 교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문재인 정부의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과 견주는 시각이 제법 많다. 둘 다 미국의 요구로 파병 논의가 촉발됐고, 파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정세와 한-미 동맹 관리라는 이중의 숙제를 정부가 안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파병 부대의 성격, 파병 지역의 상황, 파병 부대에 대한 위협의 세기 등에서 다른 점이 더 많다.

이라크 파병은 북한 핵문제를 놓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미국을 협상으로 이끌어내려는 노무현 정부의 고민에서 이뤄졌다.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지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회고록 <칼날 위의 평화>에서 이라크 파병을 ‘한반도에서 군사적 수단의 동원을 반대한 노 대통령의 입장을 경청한 미국에 대한 보답’이라고 표현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을 추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호르무즈 파병을 결정했다.

그렇다고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한-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순 없다. 문재인 정부가 올해 들어 독자적인 남북관계 진전 구상을 밝히면서 제재의 틀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불협화음을 빚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지만, 미국도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법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서로가 대립하고 있다고 보긴 힘들다. 미국의 과도한 요구로 난항을 겪던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초기에 비하면 타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정부도 호르무즈해협 파병과 한-미 관계 현안은 별개라고 강조한다.

이라크 파병은 이라크의 평화재건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이뤄졌다. 2003년 4월 573명 규모의 건설공병지원단 서희부대와 100명 규모의 국군의료지원단 제마부대가 이라크로 떠났다. 2004년에는 3000명 규모의 평화재건단 자이툰부대가 이라크로 향했다. 이들은 모두 비전투병으로 구성됐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 북부 지역의 치안을 담당할 수 있는 전투부대를 요청했으나 노무현 정부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이툰부대는 아르빌에 진지를 구축하고 주민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거나 마을 하수구를 정비하는 등 재건 임무를 수행했다. 외곽 경비와 경호는 쿠르드족 페슈메르가 민병대에 맡겼다. 그러나 호르무즈해협에 파견되는 청해부대는 대잠, 대함, 대공 무기를 갖춘 첨단 구축함에 탑승한 전투부대다. 자이툰부대처럼 한곳에 웅크리고 있는 게 아니라 상황이 발생하면 선박을 호송하고 위험지역을 지나야 한다.

자이툰부대가 파병될 당시 이라크는 미군에 점령된 상태였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은 개전 20일 만에 바그다드를 함락시켰다. 53만8000명의 정규군과 65만명의 예비군을 자랑하던 이라크군은 전투 한 번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무너졌다. 자이툰부대를 실질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정규군이 사라진 것이다. 반면, 호르무즈해협을 통제하는 이란은 대규모 정규군을 거느리고 있다. 이란은 로켓까지 발사할 정도로 막강한 미사일 전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청해부대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거나 접근할 경우, 그 존재감만으로도 위협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라크 파병은 국회 동의라는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파병 반대 여론은 2004년 이라크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던 김선일씨가 한국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테러단체에 납치돼 살해당하면서 철군 요구로 이어졌다.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결정한 문재인 정부는 청해부대의 파병동의안에 적시된 ‘유사시 작전 범위 확대’에 해당한다며 추가적인 국회 동의가 필요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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