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16일 백악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차별적 조치가 담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해 정부가 미국 쪽에 법 집행 과정에서 유연성을 발휘해 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또 국제 통상규범 위반 소지가 있는 만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분쟁해결 절차를 밟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25일 기자들과 만나 “해당 법은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차와 수입차에 대해 보조금을 차별적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세계무역기구 규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16일 기후변화 대응과 보건의료 분야 지원 확대, 대기업 증세 등을 뼈대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했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기차 보급 확대를 추진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북미에서 완성된 차량으로 보조금 지급 대상을 제한해, 한국을 비롯해 미국 시장에 전기차를 수출해 온 외국 자동차 업체들이 피해를 입게 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해당 법이 발효돼 보조금을 지원받지 못하게 되면서 한국산 전기차 가격이 상대적으로 1000만원가량 갑자기 오른 꼴”이라며 “불과 열흘 남짓 만에 미 의회 상·하 양원에서 통과되고 대통령이 서명까지 하는 등 이례적으로 빨리 입법이 이뤄져 손을 써볼 틈도 없었다”고 말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주도해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기후변화 대응과 중산층 생활 안정화를 위한 내용이 대폭 담겨 있다. 국내에서 전기차 업계의 피해를 우려하고 있지만, 미국 내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 쪽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통상규범 위반 소지가 있음에도 조속한 법 개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에 따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미 정부와 의회 쪽에 차별적 조항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유예기간 설정 등 법 적용 과정에서 유연성을 발휘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온 건 아니지만,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일본 등 같은 처지로 내몰린 전기차 생산국과 공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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