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에서 ‘아크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이란을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의 적”이라 규정한 발언의 후폭풍이 안팎으로 거세다. 이란 정부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전적으로 무지한, 간섭적 발언”이라 맹비판하며 “한국 외교부의 설명”을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의 아마추어 외교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15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연합 자이드 밀리터리시티에 있는 ‘아크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나왔다. 윤 대통령은 파병 장병들을 격려하는 연설 도중에 “아랍에미리트는 우리의 형제국”이라며 “아랍에미리트의 적,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 이후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각각 “우리 장병을 격려하기 위한 취지에서 한 발언이었다”, “한-이란 양자관계와 무관하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란 외교부는 16일(현지시각) 윤 대통령의 발언이 “간섭적”이고 “외교적으로 부당”하며 “전적으로 무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세르 칸아니 외교부 대변인은 “이란 외교부는 한국의 최근 행보를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며 “이란은 문제 발언과 관련한 한국 외교부의 설명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한국 외교부는 17일 “이란과의 지속적 관계 발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는 변함없이 확고하다”고 거듭 해명했다.
이란 정부의 공개 반발이 아니라도 윤 대통령의 발언은 외교적으로 부적절할뿐더러 사실관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은 2016년 주이란 대사를 소환한 지 6년 만인 지난해 8월 사이프 무함마드 알자아비 대사를 이란 테헤란에 다시 파견하며 “양국 관계 발전과 지역 전체의 공동 이익 달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아랍에미리트-이란 관계는 ‘적대 관계’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예상치 못한 외교적 곤경에 처한 아랍에미리트연합 정부는 침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돌출 발언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 탓에 어려움에 부닥친 한-이란 관계에 심각한 부담이 되리라는 우려가 크다. 대이란 외교에 깊이 관여한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란과 관계에서 우리가 ‘을’인 처지인데 윤 대통령의 국익을 해치는 무신경한 발언에 말문이 막힌다”고 했다. 미국 제재 탓에 한국이 이란에 주지 못하고 있는 원유대금 70억달러(8조6600억원) 문제가 대표적이다.
‘외교 초보’인 윤 대통령의 ‘무신경 외교’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영국 방문 때 여왕 조문을 빠뜨렸고, 이어진 미국 방문 땐 비속어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11일에는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핵이 올 수 있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며 일본 정부의 방위비 증액과 적기지 공격 능력 강화를 담은 새 국가안보전략을 쉽게 용인하는 발언을 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더하기 외교를 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은 오히려 빼기 외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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