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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한-일 대치 파고 높아질 듯

등록 2006-04-25 11:26수정 2006-04-25 13:28

국제무대서 한일 `각박한' 외교전 불가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해 기존의 `조용한 외교'를 전면 재검토해 정면대응을 천명하고 나섬에 따라 한일간 대치의 파고가 더 높아질 전망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이번 동해 측량 시도로 독도를 국제분쟁지역으로 부각시켰다고 보고 영유권 주장을 보다 노골화할 태세여서, 앞으로 한일간 갈등은 전면전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강행과 역사교과서 파문, 일본 지도자들의 잇단 망언에 이은 이번 독도 도발을 계기로 우리 국민의 대일 감정은 이미 거의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또 노 대통령이 특별담화에서 독도 도발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한 점령지 권리, 나아가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이를 세계 여론과 일본 국민에게 고발해가겠다고 밝힘에 따라 국제무대에서 한일간 `각박한' 외교전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한일 양국이 금과옥조로 여겨온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파경'으로 치닫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의 인식은 일본이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고 그에 근거한 권리를 주장하는 한 한일간 우호관계는 결코 바로 설 수 없으며 한일간의 미래와 동아시아의 평화에 관한 일본의 어떤 수사(修辭)도 믿을 수 없다는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 파경 위기의 배경은 뭔가 = 한마디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탐욕에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일 양국간 미래 지향적인 공동파트너십의 출발점이 `과거 직시'인데도, 일본이 과거 범죄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주권에 도전하고 있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조성해갈 수가 없게 됐다는 것.

1998년 10월 양국 정상의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일본이 과거 한 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카운터파트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일 측의)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 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 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인 요청"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과거 직시'라는 전제조건이 야스쿠니신사 참배과 역사교과서 왜곡, 그리고 독도 도발로 인해 완전히 깨졌다는 게 우리 정부의 인식이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은 서서히 신뢰를 무너뜨려왔다"면서 "특히 일본의 이번 동해 도발은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일본의 독도부근 수역 측량시도로 대일 국민감정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작년에 일본 시마네(島根)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고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전 주한 일본대사가 서울 한 복판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 것이 단순한 선언적 의미를 갖는다면 이번에는 우리의 독도 영유권을 침탈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최근 몇년새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고 있는 사이 일본이 이를 빌미로 자국 내 우경화를 부추기면서 `군사대국화'를 추진해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는 일본이 90년대의 장기 불황을 거치면서 `강한 일본'을 요구하게 됐고 이 때문에 이제 한국 또는 중국이 과거사 문제를 정당하게 비판해도 오히려 이를 내정간섭이라고 보면서 반발하는 기류가 있으며 이번 독도 도발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노 대통령이 독도문제와 관련해 정면 대응을 선언하고 나선 것도 이처럼 뒤틀려진 한일관계의 현재를 극복하기위한 결단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가 노 대통령의 특별 담화를 계기로 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 정부와 민간 차원의 압박은 물론 국제무대에서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우리의 영토주권에 도전하는 일본에 대해 외교적인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여 향후 일본의 대응이 주목된다.

◇ 독도 도발과 한일관계 기조 = 독도 영유권 문제가 한일간에 이처럼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던 적은 거의 없다.

일본의 끊임없는 도발에도 불구하고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한국이 국제분쟁지역화를 우려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일본이 1978년부터 은밀한 방법으로 국제수로기구(IHO)에 독도 부근 수역에 대해 자국 지명 등재를 추진해왔고 이에 맞서 우리 측이 한국식 지명 등재를 추진하자 일본이 급기야는 동해 배타적경제수역(EEZ) 탐사 도발을 자행함으로써 분쟁은 이미 현실화됐다는 점에서 독도는 그야말로 한일 간에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사실 독도 문제는 5,6공화국 시절에는 한일간 주요 쟁점이 아니었다.

냉전의 기운이 여전했던 1980년대에는 사회주의 세력, 특히 대북 억지력 확보가 외교안보에 있어 키워드였고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 독도문제는 충돌로 이어지지 않는 한 현안으로 부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는 전두환(全斗煥) 정권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내각간의 친밀한 관계가 완충지대 역할을 한 탓도 있다.

이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집권 때에는 이른바 `북방정책' 표방으로 사회주의 권 국가로 외교지평이 확대되면서 일본과 눈에 띄는 마찰은 없었다.

물론 이 시기에도 일부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은 간헐적으로 나타났지만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일본 총리가 "이웃 나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실을 깊이 자각, 그와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전후 줄곧 평화국가의 길을 걸어왔다"고 밝히는 등 `반성'의 기조는 이어졌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부터 일본의 과거사 망령이 되살아나면서 양국간에 간혹 충돌이 있기는 했으나 IMF 위기속에 출범한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는 경제위기 극복의 필요성과 남북화해협력이라는 대북 정책 기조속에서 일본과의 협력 필요성이 크게 제기되고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지향적인 `파트너 십' 선언이 나왔다.

과거사를 전면에 내세워 한일 간에 장애를 만들기보다는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수립하자는데 서로 의견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도 동북아 시대의 중요성과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일본과의 협력강화가 긴요해지면서 집권 초기에는 미온적 대응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해결은 일본 스스로'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일본과의 관계 강화에 노력했다.

그러나 일본이 자국내의 급격한 우경화 분위기를 바탕으로 우리 정부의 `선의'를 왜곡해 교과서 왜곡 등의 과거사 도발에 이어 이번에는 독도 침탈이라는 본격적인 영토분쟁까지 일으킴으로써 한일 공동 파트너십의 파경은 물론 `대치'까지 염두에 둬야할 상황에 이르고 있다.

◇ 경제.사회.문화 교류는 `정상대로' 될 듯 = 일본의 독도 도발로 한일 간에 정치적인 대치의 파고가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그 이외에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의 교류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특별 담화에서 "우리의 역사를 모독하고 한국민의 자존을 저해하는 일본 정부의 일련의 행위가 일본 국민의 보편적인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며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 점도 정치 이외의 다른 분야가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는 우려를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교과서 왜곡 등의 숱한 악재가 불거졌던 작년에도 정치를 제외한 다른 분야는 별다른 문제없이 정상 가동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크게 주목은 못 받았지만 외교적인 성과도 적지 않았다.

양국간 협의를 바탕으로 3월부터 한국인에 대한 90일 이하 체류조건의 단기비자가 영구 면제되고 원폭피해자들이 국내에서도 보상을 신청할 수 있게 됐고 일본 측의 한센인 보상법 개정으로 일제 강점기 국내 한센인 피해자들이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100년만에 북관대첩비를 반환받기도 했다.

김포-하네다간 셔틀 항공편도 지난해 5월 기존 1일 4편에서 8편으로 증편된 것 등에 힘입어 지난해 양국간 인적교류가 420만명을 기록하는 등 다양한 실적을 기록 했다. 물론 경제, 사회적인 교류도 원활하게 진행됐다.

정치적 대치에도 불구하고 실무적인 교류와 협력은 그런대로 유지된 셈이다.

정치분야에서 한일 양국은 오랜 정치적 경색을 풀기 위해 지난달 6일 도쿄(東京)에서 차관급 전략대화를 가졌고 후속회담도 열기로 했다. 후속 회담이 순조롭게 성사될 지, 성사된다면 어떤 논의가 이뤄질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kjihn@yna.co.kr 인교준 기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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