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윤형 정치부 통일외교팀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정치부 통일외교팀 길윤형입니다. 요즘 제가 출입하는 외교부와 통일부는 6년 만에 성사됐다 무산된 남북 당국회담 관련 뉴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좀 다른 얘길 해볼까요?
11일 안전행정부는 올해를 끝으로 폐지되는 외무고시 마지막 합격자들을 발표했습니다. 46년 역사를 자랑하는 외시 대신 내년부터 도입되는 제도는 외교관 후보자 제도입니다. 이 제도에 따라 국립외교원이 외교관에 적합한 역량을 가진 젊은이들을 뽑아 교육한 뒤, 적합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 이들을 5급 외교관으로 선발하게 됩니다.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이들을 법조계에 흡수한다는 명분으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첫 신입생을 모집한 것은 2009년입니다. 외교부도 그 영향을 받은 탓인지 다양한 인재를 외교관으로 흡수해 국가의 외교 역량을 키우겠다며 2009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에게 ‘외교아카데미 설립을 통한 외교관 충원 및 외교역량 강화방안’을 제출하게 됩니다.
당시 정부가 만든 문건을 볼까요. 우리나라 외교관의 수는 2011년 현재 2189명으로 미국(2만1505명), 프랑스(9900명), 일본(5752명) 등에 견줘 적고, 10만명당 비율로 환산해도 4.4명으로 프랑스(15.1명), 오스트레일리아(11.8명), 영국(8.0명)보다 적습니다. 인원만 적은 게 아니라 선발 방법도 시대에 뒤처져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 외교관의 역량을 다양한 기준에 따라 판단하지만, 우리나라는 고시와 같은 단순 지식을 평가하는 암기식 시험에 의해 인원을 충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외시를 폐지하고 1차는 공직 적격성 평가(PSAT), 2차는 논문형 필기시험을 통해 1.5배수 안에서 후보자를 선발한 뒤 1년간 집중적인 양성과정을 거쳐 5등급 외교관을 뽑겠다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이 제도에 의해 1차 시험이 4월27일 치러졌고, 연말께 1기 외교관 후보자들이 선발될 예정입니다.
이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평가는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2010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불법 특채’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시민들이 볼 때 신경 쓰이는 것은 역시 ‘외교관 대물림’ 논란입니다.
그런 걱정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예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시행된 이른바 ‘2부 외무고시’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6년 동안 외국 체류 경험자들을 대상으로 한 제한경쟁시험으로 기본과목은 면제해주고 외국어 능력만으로 인원을 선발하게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영어 이외의 제2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외국 체류 경험을 가진 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저도 외고를 졸업한 덕에 프랑스어도 배우고, 업무에 필요해 일본어·중국어를 공부했지만 실력은 대단하다 할 수 없습니다. 외교관 자녀들은 어린 시절 풍부한 외국 체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외국어에 있어선 다른 이들보다 월등하겠죠. 실제로 이 제도를 운영한 7년 동안 선발된 이들 가운데 43%가 외교관 자녀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위헌 논란’ 등 다양한 소동이 일어나 이 제도는 2004년 폐지됩니다.
외교관 후보자 제도는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울까요? 국립외교원은 첫 선발인원 45명 가운데 60%는 일반전형, 20%는 중동·아프리카·아시아 등 지역전형, 20%는 군축·에너지·국제통상 등 전문전형으로 구분해 선발할 계획입니다. 일반전형에는 외교관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20 대 1이 넘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지역전형이나 전문전형은 경쟁률이 그보다 훨씬 낮습니다. 대신 지역전형과 전문전형은 관련 분야 석사 이상의 학위를 보유하고서 2년 이상의 경력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지역전형의 경우 요구하는 경력을 채우지 못해도 언어능력이 특출하면 지원이 가능합니다.
로스쿨 제도의 경험에서 보듯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4월 보도를 보면, 지난 4년 동안 서울대 로스쿨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특수목적고와 자립형사립고,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소재 일반계고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외교관 후보자들의 계층과 지역 분포는 어떻게 될까요? 대물림 논란은 종식될 수 있을까요? 첫 후보자들이 선발된 뒤 깐깐히 따져봐야 할 문제입니다.
길윤형 정치부 통일외교팀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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