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사이에서] ② 싱가포르
샹그릴라 대화’ 주관 영국 이사
“한국 국방장관 연설 회피” 쓴소리
일본은 자위권 문제 등 적극 제기
샹그릴라 대화’ 주관 영국 이사
“한국 국방장관 연설 회피” 쓴소리
일본은 자위권 문제 등 적극 제기
“한국 정부도 입장(관점)은 있을 것 아니냐.”
싱가포르에서 이달 말 아시아안전보장회의(이른바 샹그릴라 대화)를 주관하는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팀 헉슬리 아시아지부 이사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는 지난달 2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샹그릴라 대화 참가와 관련해 “특별한 코멘트가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는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참가해온 한국을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지난 2~3년 동안 한국 국방장관은 샹그릴라 대화에서 연설을 하고 싶어하지 않아 유감”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올해도 참석 의사만 밝히고 연설은 하지 않겠다고 통지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한국은 국가안보 정책을 설명할 좋은 기회를 내버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한국 국방부가) 일본과의 관계에서 제기되는 어려움 때문이라는 설명을 해왔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국의 정책적) 입장이 있을 것 아니냐”며 “만일 없다면, 그건 내가 다 걱정되는 문제”라는 말로 맺었다.
‘샹그릴라 대화’는 해마다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지역 안보대화체다. 각국 국방장관을 중심으로 학계와 언론에 열린 회의체로 2002년부터 싱가포르 정부와 국제전략연구소가 공동 주관해왔다. 지난해 기조 연설자로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곳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필요성을 제기한 ‘아베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에 회의장에 있던 왕관중 중국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 등은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과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중국에 대한 도발’이라며 즉각 맞받아쳤다. 헉슬리 이사는 이처럼 아태지역 안보를 둘러싼 주요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유독 말을 아끼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지난해 김관진 국방장관이 싱가포르 국방장관 주최 비공식 오찬행사에서 연설을 한 바 있지만, 헉슬리 이사는 “본 세션과 전혀 다른 의미”라고 말했다. 한국은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태 뒤 참석해 연설한 이래 침묵을 지켜온 셈이다.
이와 정반대로 싱가포르 외교관은 한국 외교가 빛나던 때를 전해줬다. 키쇼어 마부바니 싱가포르국립대학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 원장은 지난달 30일 <한겨레>에 1989년 탄생한 아펙(APEC)을 둘러싼 일화를 들려줬다. 싱가포르가 초대 의장국을 맡았던 아펙은 당시 위태위태했다. 아펙이 순항할 수 있을지는 차기 의장국 한국의 손에 달렸다. 천안문 사태 뒤 외교적으로 고립됐던 중국이 아펙에 가입하고 싶어했다. 문제는 대만과 홍콩 역시 가입하고 싶어했으나 ‘하나의 중국’ 원칙에 집착하는 중국은 두 나라의 동급 가입을 용인하지 못했다. 대만도 중국의 ‘일부’ 자격으론 참여할 수 없었다.
그때 한국 외교관들이 중국과 대만, 홍콩이 모두 가입할 수 있는 묘안을 고안해냈다. 대만이 국가로 참가하는 게 아니라 경제주체로서 참가하도록 제안하고 양쪽 모두를 설득했다.
마부바니 원장은 “한국 외교가 지정학적 창을 연 때이자 한국 외교가 가장 빛나던 때”라고 회상했다.
싱가포르/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