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타 고지(富田浩司) 주한 일본 대사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초치된 뒤 외교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는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이 담긴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이날 일반에 공개했다. 연합뉴스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가 깃든 군함도(하시마)에 대해 ‘역사 왜곡’을 시도하면서, 이 문제가 한-일 사이에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떠올랐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군함도 문제가 강제동원 노동자들에 대한 배상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은 15일 오후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일본 정부가 2015년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며 “한국인 강제동원 역사를 제대로 알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강력 항의했다. 일본은 앞선 2015년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하시마 등 일부 산업시설에서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던 일이 있었다.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인포메이션센터 설치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 대표의 이런 약속을 받아들여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에 적극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센터 정식 개관을 하루 앞둔 14일 공동취재기자단이 센터에 가보니, 일본 정부가 약속 이행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조선인이 섬에서 좋은 환경에서 살았다’는 왜곡된 내용으로 전시물을 구성한 사실이 확인됐다. 일본 정부의 이런 대응에 대해선 현지 언론 일부도 문제를 제기했다. <아사히신문>은 14일 “한반도 출신 징용공과 관련해 학대와 차별이 없었다는 섬 주민의 인터뷰가 소개돼 있어 한국이 문제를 삼을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가토 고코 센터장은 문제가 된 전시 내용과 관련해 “정치적 의도는 없다. 70여명의 섬 주민을 인터뷰했지만 학대를 받았다는 증언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도통신>은 14일 익명의 일본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식민 지배 당시 하시마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비인도적 대우를 받았다는 정설을 ‘자학사관’으로 보고 반론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카다 나오키 관방부장관도 오후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번 논란에 대해 “전시 내용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권고를 고려해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가며 적절히 판단한 것”이라며 한국 정부의 항의를 받아들여 내용을 수정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실제 생존자들의 증언을 담은 자료집을 보면,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해 여러 저작을 남긴 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작고)가 2010년 펴낸 책 <지쿠호·군함도―조선인강제연행 그 뒤>를 보면, 당시 군함도에서 광부로 일했던 강시점 부부의 사연이 나온다. 강씨는 책에서 “(일본인) 노무 담당은 조선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조선인은 세상에서 가장 하등의 존재라고 생각해 명령만 하고 화만 냈다”고 증언했다. 탄광 생활을 견디다 못한 강씨가 남편에게 “빨리 나가사키에 나서 다른 노가다(육체노동)라도 하자”고 조르자, 남편은 “이 섬에서 도망치면 ‘시마누케’(섬을 빠져 나온 사람)라 해서 붙잡혀 살해당한다”고 말리기도 했다.
길윤형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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