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내년 여름 도쿄에서 열리는 올림픽 성공 개최를 매개로 꽉 막힌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예정됐던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일본 방문이 취소되는 등 타협안 도출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도쿄 평화올림픽’이라는 대의 아래 돌파구가 열릴 수도 있다.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은 12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의원연맹 총회에서 “한-일 관계는 과거사 문제로 인한 갈등이 경제나 안보로까지 비화되는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도 “일본 정부에서 내년 7월 추진하는 도쿄올림픽이 (관계 개선의)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 자리에 오기 전에 공항에서 내려서 모리 요시오 올림픽준비위원장을 예방하고 왔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도쿄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적극 지원하고 교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도 “대국적 견지에서 새로운 일-한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도 이날 오후 아키바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취임 후 첫 전화회담을 통해 도쿄올림픽을 특별히 언급하며 “성공 개최를 기원”했다. 이에 대해 아키바 차관은 “사의를 표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정부가 도쿄올림픽 성공 개최를 매개로 관계 개선을 모색하려는 메시지를 다각적으로 던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직 일본 정부가 관계 악화의 핵심 원인인 강제동원 피해자 판결과 관련해 한국에 납득할 수 있는 ‘선 조처’를 요구하는 강경 자세를 누그러뜨리진 않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서훈 실장이 17일께 방일한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 “가기로 돼 있는데 취소됐다. 이런저런 게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기자들에게 “서훈 실장 방일 보도는 사실이 아님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서 실장의 방일이 취소된 것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최근 일본을 다녀온 뒤에도 관계 개선을 위한 ‘타협안 도출’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일-한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릴 수 있는 계기를 한국이 만들어야 한다”며 한국 정부가 ‘현금화 절차 중단’ 등의 ‘선 조처’로 관계 개선을 위한 물꼬를 터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강제징용 문제를 풀려면 “피해자들의 의사가 중요하고 합의가 선결돼야 하는데, 입장 차가 커 쉽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한국에선 이런 상황 돌파를 위해 도쿄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한 협력을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여세를 몰아 일본을 포용하는 2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가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일 협력을 통해 내년 초 한반도 주변 정세를 우호적으로 이끌면, 내년 도쿄에서 남·북·미·일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거대 외교 이벤트가 가능할 수도 있다.
길윤형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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