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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일본은 ‘감정에 치우치는 나라’가 되고 싶은가

등록 2021-06-15 16:12수정 2021-06-16 07:50

[현장에서] 문 대통령이 콘월에서 스가에게 다가간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2월 24일 오후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두/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2월 24일 오후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두/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을 다루는 일본 언론의 태도엔 늘 ‘우에까라 메센(上から目線)’이 깔려 있다고 절감하곤 한다. ‘우에까라 메센’이란 도덕성과 실력으로 우월한 입장에 선 이가 자신보다 열등한 이들에게 한 수 가르치려는 태도를 뜻한다. ‘한국은 늘 감정에 치우치는 나라’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 ‘지지율 회복을 위해 반일 감정에 의존하는 나라.’ 그런 보도를 쏟아낸 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번엔 사설을 통해 두 나라가 외교적 노력을 통해 이제 그만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훈수가 잇따른다.

예를 찾으러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일본의 리버럴을 대표하는 <아사히신문>은 닷새 전인 10일 사설에서 영국 콘월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활용해 “단시간이라도 서로 마주 보고 사태를 타개하려는 기운을 모색”해 볼 것을 촉구했고, 보수를 대표하는 <요미우리신문>은 9일 문 대통령에게 “책임을 갖고 일·한 간의 현안에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 2018~2019년 벌어진 극심한 갈등 이후 일본을 바라보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에 적잖은 변화가 이뤄졌다고 느낀다. 특히 지난해 9월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취임한 뒤엔 관계회복을 위한 처절한 외교적 노력이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도쿄로 보내 “도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개최하자”는 메시지를 던졌고,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선 문 대통령 자신이 직접 나서 현재 압류 중인 일본 기업들의 자산이 “현금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3·1절 기념식 연설에선 다시 한 번 ‘역지사지’의 정신을 강조하며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고 화해를 호소했다.

그래도 일본이 태도를 바꾸지 않자 양국 외교당국의 ‘사전 합의’에 따라 12일 스가 총리를 상대로 ‘약식회담’에 임하게 된다. 7월23일 열리는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할 테니, 이를 계기로 꽉 막힌 양국 관계를 풀어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14일 약식회담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시간 사정’ 때문이라 설명했지만, 궤변일 뿐이다. 익명의 외무성 간부를 인용한 15일치 <요미우리신문>보도를 보면, 일본도 “‘다치바나시’(서서하는 약식회담) 정도라면 가능하다”는 입장을 한국에 전달했고, 위안부 얘기가 나올 경우에 대비해 ‘응답요령’을 작성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스가 총리도 문 대통령이 대화를 위해 자신에게 두 차례나 다가왔음을 인정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통화를 위해 새벽 0시47분에 전화기 앞에 대기했던 스가 총리에게 부족했던 것인 ‘시간’이 아니라 상대를 대하는 ‘성의’가 아니었을까 한다.

35년에 걸친 식민지배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마음은 일본인들의 작은 망언 하나에도 크게 요동치곤 한다. 도쿄올림픽 누리집에 실린 지도에 희미하게 독도가 표기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여권의 주요 대선 주자들은 “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주장을 내놓는 중이다. 그런 극단적 의견과 맞서가며 스가 총리에게 다가섰던 문 대통령의 마음을 일본도 헤아리기 바란다. 가토 관방장관은 15일엔 문 대통령의 방일을 놓고 한-일이 협의 중이라는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답했는데, 그래서 일본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늘 감정에 치우치는 일본’,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후세에 교육하겠다는 고노 담화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본’, (30%대 초반으로 떨어진 지지율 회복을 위해) ‘반한 감정에 의존하는 일본’. 그런 경멸 어린 시선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을 바라보지 않기 위해 한국인들은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중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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