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후보. 심상정,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한겨레 자료.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뽑는 대통령선거를 2022년 3월9일에 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여덟번째다. 후보자 등록 신청은 2022년 2월13일과 14일, 선거기간 개시일은 2월15일이다. 아직 멀었다.
그러나 20대 대선의 막은 이미 올랐다.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결정되면서다. 169석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재명(57) 전 경기지사다. 103석 제1야당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윤석열(61) 전 검찰총장이다.
6석 정의당은 심상정(62) 의원, 3석 국민의당은 안철수(59) 전 대표가 후보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동연(64) 전 경제부총리는 ‘새로운 물결’이라는 정당을 만들고 있다. 현역 의원인 시대전환 조정훈 대표가 지지한다.
국회의원이 없는 정당의 후보들이나 무소속 후보들도 더 출마할 것이다. 대통령은 국회의원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면 출마할 수 있다. 3억원의 기탁금을 내야 한다.
그래서 결국 누가 당선될까? 알 수 없다. 여기는 ‘다이내믹 코리아’다.
선거일까지 무려 4개월이 남았다. 투표일 전날 밤 후보 단일화 파트너가 갑자기 지지 철회를 선언하고, 밤사이 역풍이 불어 오히려 그 후보가 당선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래도 궁금하다. 누가 이길까?
최근 여론조사 수치를 보면 양강 구도가 뚜렷하다. 이재명 전 지사나 윤석열 전 총장이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2일 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두 사람의 우세와 열세를 가리기는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의 격차는 표본오차 이내다. 이런 걸 바둑 용어로는 ‘눈 터지는 계가 싸움’이라고 한다.
역대 대선 결과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1997년 김대중-이회창 대선은 40.27% 대 38.74%, 1.53%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2002년 노무현-이회창 대선은 48.91% 대 46.58%, 2.33%포인트, 2012년 박근혜-문재인 대선은 51.55% 대 48.02%, 3.53%포인트 차이였다.
이 정도 판세에서는 작은 변수나 실수 때문에 당락이 얼마든지 뒤바뀐다. 2022년 3월9일 대선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하나님도 모를 것이다.
우리가 대통령선거에 목을 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임무는 엄중하다. 취임할 때 이렇게 선서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최종 선출된 뒤 꽃다발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대 대통령의 임무는 더욱 엄중하다. 코로나 일상 회복에 성공해야 한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기후재난에 대처해야 한다. 부동산값을 안정시켜야 한다. 지방분권으로 수도권 집중을 막아야 한다.
유권자는 이런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정책 공약을 잘 살펴서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도 실현 가능한 정책 공약을 정성껏 제시해야 한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현실은 전혀 다르게 돌아간다. 이번 대선은 정책 선거가 아니다. 인물 선거다. 사실은 역대 대선이 다 그랬다. 우리 정치와 정당, 정치인과 유권자들의 수준이다.
우리 국민은 대통령 한 사람 잘 뽑으면 나라가 발전하고 자신도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당 정치, 의회 정치, 민주주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일 것이다. 정당보다 후보, 정책보다 인물에 여전히 집착하는 이유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그래도 역대 대선에서는 몇가지 대형 의제가 선거판을 이끌었다. 1997년 외환위기 극복, 2002년 행정수도 이전, 2007년 한반도 대운하, 2012년 경제민주화가 있었다.
이번 대선은 대형 의제가 보이지 않는다. 2017년 적폐청산처럼 ‘응징 선거’가 될 것 같다. 2017년과 다른 점은 야당은 여당을 응징하고, 여당은 야당을 응징하려는 태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응징과 응징이 충돌하면 선거가 아니라 전쟁이 된다. 불길한 조짐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재명 후보가 집권여당의 후보로, 윤석열 후보가 보수 제1야당의 후보로 선출됐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두가지다. 첫째, 반정치주의의 심화다. 둘째, ‘나쁜 남자’들의 대결이다.
반정치주의부터 따져보자. 정치의 본령은 대화와 타협이다. 대화와 타협은 주로 국회에서 이뤄진다. 정치를 국회의원들이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나 윤석열 후보는 국회의원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대선 후보로는 참 특이한 이력이다.
국회의원을 하지 않은 역대 대통령은 세 사람뿐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 그리고 그사이에 낀 최규하 대통령이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최종 승리한 것은 사실 이변이다. 정치 경험이 많은 전직 대표 세 사람이 맥을 못 추고 나가떨어졌다. 이낙연 전 대표는 5선 국회의원이었다. 국무총리를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6선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장을 했다. 추미애 전 대표도 5선 국회의원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경선에 처음 뛰어든 9명의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후보였다. 일반 국민이나 당원들이 이재명 전 지사를 대선 후보로 뽑은 것은 그가 이른바 여의도 정치와 가장 거리가 멀기 때문이었다.
왜 그랬을까? 정치에 대한 개혁 열망이다. “기존 정치판을 확 뒤집어엎으라”는 주문이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꺾은 것도, 2012년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손학규·정세균 후보를 꺾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개혁 열망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너무 강해서 위험한 수준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 분수대 앞에서 제20대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전 총장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것은 더더욱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다. 그래도 이재명 후보는 선출직 공직자였다. 정치인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전혀 다르다. 그의 정체성은 정치인이 아니다. 검사다. 검사는 수사하고 기소하고 재판하는 직업이다. 과거를 재단한다. 미래를 설계하는 정치인과는 유전자가 다르다. 선진국에서 검사가 곧바로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다이내믹 코리아’가 아니라 ‘인크레더블 코리아’다.
노태우 대통령은 전두환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던 군 출신들을 쫓아내고 검사들을 대거 기용했다. 경북고 출신 검사였던 정해창 청와대 비서실장, 서동권 안기부장을 임명했다. 검찰을 앞세워 ‘범죄와의 전쟁’도 했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때는 그래도 검찰이 권력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윤석열 전 총장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검찰이 아예 권력을 통째로 접수하는 것이다. 검찰공화국의 완성이다. 반정치주의의 승리다.
‘나쁜 남자’ 얘기를 해보자. 이재명 후보나 윤석열 후보는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경선에서 이겼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야흐로 ‘빌런’(villain)의 시대다. 빌런은 악당이지만 이야기나 연극의 중심인물이다. 빌런은 거악을 물리치기 위해 소환된 존재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그들을 감옥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윤석열 전 총장을 소환했다. 윤석열 전 총장의 수많은 결함은 문재인 정부 사람들을 제대로 혼내주기 위한 장점으로 둔갑했다. 조직폭력배의 문신처럼 말이다.
반대로 ‘적폐 세력’인 국민의힘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재명 전 경기지사를 밀어 올렸다. 형수 욕설 파문, 여배우 스캔들 등에도 눈을 질끈 감았다.
빌런의 시대를 떠받치는 구조적 기반이 있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특징은 사람들의 확증 편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사실과 믿음이 충돌하면 사실을 버린다. 믿음에 부합하는 다른 사실이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아먹는 정치인들이 이런 생태계의 변화를 놓칠 리 없다. 유권자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조직화해서 투표장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이다.
반정치주의 심화와 나쁜 남자들의 대결이라는 두개의 프레임은 지금부터 내년 3월9일까지 온갖 조화를 일으킬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분명한 건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역대 어느 대선보다 더 심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 분수대 앞에서 제20대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번 대선은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이 몇군데 있다.
첫째, 후보 교체 가능성이다.
양강 구도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적대적 공존 관계를 형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사다. 이재명 후보가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가 갑자기 드러난다거나, 손준성 검사가 “사실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고발하라고 시켰다”고 자백이라도 하는 날이면 지지도가 폭락하고 후보가 교체될 수 있다.
공직선거법은 “경선에서 후보자로 선출되지 아니한 자는 당해 선거의 같은 선거구에서는 후보자로 등록될 수 없다. 다만, 후보자로 선출된 자가 사퇴, 사망, 피선거권 상실 또는 당적의 이탈·변경 등으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이재명·윤석열 후보가 사퇴하거나 당에서 쫓겨나면 경선에서 패배한 이낙연 전 대표, 홍준표 의원에게 출마의 길이 열린다. 누구를 공천할지는 정당이 알아서 할 몫이다. 국민의힘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출마할 수도 있다.
둘째, 압도적인 정권교체 여론이다.
최근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론이 정권유지론을 앞선다. 20%포인트 이상 벌어지는 조사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서울 민심은 여당 후보에게 등을 돌린 상태다. 11월에는 종부세 고지서도 나온다. 이재명 후보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지형이다.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 경선 후보 가운데 가장 개혁적이어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선명한 개혁성보다는 미래 비전과 합리성을 보여줘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차별화 전략이 아니면서도 문재인 정부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
선거대책위원회 핵심 인사는 “진영 대결에 의존하면 이길 수 없다”며 “후보 몫 캠페인으로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중도층 표를 추가로 끌어와야 한다”고 진단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래도 ‘10년 주기설’을 은근히 믿는 눈치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10년 주기로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번에도 민주당이 이긴다는 것이다.
사실 국민의힘에서 “정권교체가 이 시대 최고의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해 정권교체가 이뤄졌던 1997년 야당의 구호를 그대로 베낀 것인데, 겨우 ‘5년 야당’이 할 말은 아니다. 두고 볼 일이다.
셋째, 윤석열 후보의 확장력이다.
선거 지형은 국민의힘에 유리하지만, 윤석열 후보의 확장력에는 문제가 있다. 20~40대 유권자들은 윤석열 후보를 싫어한다. 손바닥 왕(王) 자 사건과 개 사과 사건 때문이다. 선거에서는 논리나 이성의 위력보다 감성적인 호감-비호감의 위력이 훨씬 강하다.
홍준표 의원을 지지했던 20~40대 유권자들은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하러 투표장에 나갈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준석 대표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 중도층이나 상대적으로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오는 것은 윤석열 후보의 몫이다. 해낼 수 있을까?
넷째, 심상정·안철수·김동연 후보 변수가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이 국민의힘 후보가 되면서 ‘제3 후보’ 공간이 넓어졌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당연히 완주할 것이다. 득표력이 관심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여야 양비론을 펴며 지지도를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국민의힘과의 후보 단일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준석 대표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정치적 화해가 어려운 탓이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완주 의사를 밝혔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와 2024년 총선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결국 2017년처럼 5파전이 될 수 있다.
20대 대선 이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당장 2022년 6월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다. 2022년 3월9일 선거에서 당선된 새 대통령은 2022년 5월10일 취임식을 한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의 등록신청 날짜가 취임식 이틀 뒤인 2022년 5월12일과 13일이다. 역대 전국 선거가 이렇게 붙어서 치러진 적이 없었다. 대통령선거에서 이기는 쪽의 압승을 예상할 수 있다. 전례가 있다.
1997년 12월18일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다. 1998년 2월25일 취임했다. 1998년 6월4일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렀다. 공동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고건 서울시장, 임창열 경기지사가, 자민련 후보로 최기선 인천시장이 당선됐다.
2007년 12월19일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다. 2008년 2월25일 취임했다. 2008년 4·9 18대 총선 결과는 한나라당 153석, 통합민주당 81석, 자유선진당 18석, 친박연대 14석,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 3석, 무소속 25석이었다.
꼭 지방선거가 아니라도 대선 결과에 따라 대선 이후 정치 지형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여권 내부 권력 구도에 상당한 변화가 올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보다 11살 젊다. 세대교체가 예상된다. 이른바 586세대가 물러나고 1970년대생들이 권력 실세로 진입할 것이다.
국민의힘은 해체 수준의 정계 개편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길게 보면 이른바 보수 정당은 그렇게 해서라도 재탄생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우리나라 정치는 거대한 실험장으로 변할 것이다. 의석 차이가 워낙 큰 여소야대 상황이기 때문이다. 1988년 13대 총선 이후 ‘1노 3김’의 여소야대 시절처럼 정치가 되살아나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반대로 나라가 통째로 마비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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