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정치BAR

‘샤이 박근혜’는 보수에게 희망일까, 희망고문일까

등록 2017-03-08 05:00수정 2017-03-08 09:46

정치BAR_대한민국 ‘숨은 표’의 비밀?_정치바
하작 그림.
2010년 7월28일. 국회의원 8석이 걸린 재보궐선거 결과를 보기 위해 민주당 당사에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당시 원외였음에도 ‘실세’였던 우상호 대변인은 개표 결과가 나오기 전 기자실을 돌면서 내내 ‘숨은 표’를 강조했다. 그는 특유의 너스레를 섞어 “예전부터 보수 성향이 강한 동네에선 야당 지지자들이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면 입을 꾹 다문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야당을 지지한다고 하면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반드시 숨은 야당 표가 튀어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당 세가 강한 강원도, 충북 충주, 충남 천안에서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주장이었다. 얼마나 당당히 말하던지, 깜빡 속을 뻔했다. 결과는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의 승리였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당시 우 대변인이 숨은 표를 자신했던 건 한달 전 열린 6·2 지방선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 여론조사는 야당의 실패를 점치고 있었다. 특히 한명숙 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맞붙은 서울시장 선거가 그랬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직전인 5월24~26일 실시된 방송3사 여론조사에서 오 후보(50.4%)는 한 후보(32.6%)를 17.8%포인트 차로 앞섰다. 그러나 투표함이 열리자 오 후보는 47.4%를 얻어 한 후보 46.8%보다 겨우 0.6%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놓고 정치권 안팎에선 ‘미네르바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에도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쳐올 것을 주장하는 글을 썼던 누리꾼 ‘미네르바’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됐듯이,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여론조사에서 야당 지지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 ‘숨은표’ 폭발
여론조사 줄곧 완승했던 오세훈
실제 투표선 한명숙과 아슬아슬

불이익 우려에 “야당 지지” 숨겼다가
무상급식·4대강사업 이슈에 자극
‘친노 상징’ 야당 후보에 몰표

그동안 대개는 야당 지지층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던 ‘숨은 표’ 논란이 이번엔 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는, 보수적 유권자층이 숨어 있다는 주장이다. 보수 진영에선, ‘샤이 보수’라는 ‘금맥’의 존재를 기대하고 있다. 탄핵 정국에서 내놓고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기 부끄러워하는 숨은 보수층의 존재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부정하진 않는다. 적극적으로 샤이 보수론을 주장하고 있는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득표율이 51.6%인데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을 찍었다’고 밝히는 사람은 10~15%포인트 적게 나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실제로 지난 3~4일 한겨레·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2012년 박 대통령에게 투표했다는 응답자는 35.3%에 불과했다. 이택수 대표는 현재 압도적인 탄핵 여론과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론이 높기 때문에 응답자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돼 거짓말을 했거나 응답을 거부했을 가능성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숨은 보수표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지난 미국 대선처럼 ‘샤이 트럼프’ 현상이 재현될지는 미지수다. 미국 대선에선 선거 전에 실시한 후보 지지도 조사와 선거 결과가 현저한 차이를 보임으로써 샤이 트럼프의 존재가 입증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냉정하게 살펴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샤이 보수와 샤이 트럼프들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고 말한다.

‘샤이 응답자’가 ‘액티브 투표자’로 바뀌려면, 아무리 지지하는 후보가 막말 논란과 스캔들에 휘말리더라도 그에게 투표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후보는 이민자들에 위기의식을 느낀 백인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정확히 반영하고 욕망을 투사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은 “유권자들에게 투표 의지를 자극하기 위해선 뚜렷하게 전선이 갈리는 의제와 특정 정당·인물을 지지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 후보가 의외로 선전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무상급식 실시와 4대강 사업 반대라는 의제가 부상하며 여야 유권자 간 팽팽한 대치전선이 형성된 점이다. 또한 한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던 친노 진영의 핵심 인사였다. 더욱이 2009년 12월엔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까지 됐다가 지방선거 직전인 2010년 4월 1심에서 무죄를 받으며 이명박 정권에서 탄압받는 대표적인 친노 정치인으로 인식됐다. 이명박 정권에 비판적인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끌어모을 동인이 있었던 셈이다.

2017 대선서도 ‘숨은표’ 논란
여권, ‘샤이 트럼프’처럼 반전 기대

전문가들 “미국과 상황 달라”
뚜렷한 지지 명분·인물 없으면
특정 세력 ‘희망섞인 기대’ 그칠 것

‘샤이 유권자’의 규모를 예측하지 못했던 건 여론조사 자체의 물리적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유권자들이 대답을 꺼렸다기보다는 조사 기법에 문제가 있어 오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여론조사가 ‘폭망’했던 2010년은 우리나라의 통신 환경이 혁명적 변화를 맞던 시기였다. 무선전화(스마트폰)의 빠른 보급으로 유선전화 이용자가 대폭 줄어들었다. 당시 조사 대상에 무선전화 이용자를 포함시킨 것은, 무선전화번호 추적이 가능한 조사 패널들을 기존에 확보해놓았던 극소수 여론조사기관밖에 없었다. 전화번호를 바꾸거나 유선전화를 없앤 응답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전에 케이티(KT)에서 제공한 유선전화 명부도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2010년 이후 여론조사기관들은 유선전화 응답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했고, 케이티 전화번호 명부 대신 무작위로 생성한 전화번호를 이용하는 임의전화걸기(RDD) 기법을 도입했다.

영국에서 여론조사 예측과 달리 보수당(토리)이 6.6%포인트의 큰 차이로 승리하며 ‘샤이 토리’ 논란이 벌어졌던 2015년 총선에서도 예측 실패의 근본적 이유는 여론조사의 한계였다. 영국 여론조사기관협회는 선거 이후 여론조사의 오류에 대해 분석한 결과, 샤이 토리 때문이 아니라 여론조사의 문제라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투표일 이전 마지막 여론조사에 응답했던 이들을 선거 이후 다시 접촉해 대면조사를 벌였더니, 응답한 내용과 투표 행위가 거의 일치했다.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가 실제 투표 때는 보수당을 찍었다는 ‘샤이 토리’는 없었다는 것이다. 선거 이후 조사 대상자 선정 방식을 바꿔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실제 선거 결과에 접근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먼저 주소를 통해 조사 대상 가구를 추출하고, 그중 조사기관이 원하는 성별·연령대의 가족 구성원을 찾아내 수차례 접촉을 통해 답변을 받아냈다. 조사 기간을 이틀에서 일주일로 늘리면 이런 방식이 가능하지만, 이는 우리나라처럼 급변하는 선거정국에선 사실상 불가능한 방법이기도 하다. 투표 참여 의사를 어떤 방식으로 조사 결과에 반영하느냐도 중요하다. 투표 행위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이기 때문에 설문조사에 응한 이들은 투표할 뜻이 있다고 밝히지만, 실제론 투표소에 가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샤이 유권자들의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건전하거나 안이한 상황 인식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샤이 응답자들의 존재 여부, 규모의 예측은 어차피 사후적일 때가 많다. 이 때문에 특정 정치세력의 희망 섞인 기대나 변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세력이 스스로 낙관하기 위한 근거 없는 명분이거나 지지층에 대한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정치BAR 페이스북 바로가기
◎ 정치BAR 텔레그램 바로가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대통령실 지역기자단, ‘기자 무례’ 발언 정무수석에 “사과·해명 요구” 1.

대통령실 지역기자단, ‘기자 무례’ 발언 정무수석에 “사과·해명 요구”

G20 윤 대통령 수행원 ‘몸싸움’…브라질 보안요원과 충돌, 왜 2.

G20 윤 대통령 수행원 ‘몸싸움’…브라질 보안요원과 충돌, 왜

“김건희 개목줄” ‘댓글부대’ 의혹 커지는데…입 닫은 한동훈 3.

“김건희 개목줄” ‘댓글부대’ 의혹 커지는데…입 닫은 한동훈

부산일보 기자 “대통령한테 무례한 태도? 이제 누가 질문하겠나?” 4.

부산일보 기자 “대통령한테 무례한 태도? 이제 누가 질문하겠나?”

이재명 ‘법카 유용’ 기소에 “증거 없지만 기소한다는 게 검찰 입장” 5.

이재명 ‘법카 유용’ 기소에 “증거 없지만 기소한다는 게 검찰 입장”

‘이재명’ 흔들리는데 대안도 전략도 없는 민주당 ‘뒤숭숭’ 6.

‘이재명’ 흔들리는데 대안도 전략도 없는 민주당 ‘뒤숭숭’

유승민 “국민이 윤석열 부부는 떳떳하냐 묻는다…정신 차려라” 7.

유승민 “국민이 윤석열 부부는 떳떳하냐 묻는다…정신 차려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