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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열린 경호’…은밀하게 정확하게

등록 2017-07-20 16:35수정 2017-07-20 22:05

정치BAR_달라진 문 대통령 경호

시민과 어울리는 대통령 발맞춰
이전 정부의 철통 경호서 대전환

대통령 오면 휴대전화 먹통 되는
무선 기폭기 차단용 전파도
여민관 회의 참석하면서 사라져

낮은 경호가 쉬운 경호는 아냐
도심 행사땐 빌딩에 저격수 배치
시장 방문땐 칼 널려있어 더 긴장
요원들 변신해 좌판 앉아 감시도
차단 중심서 선진 기법으로 진화

“제자리에 계세요. 다 와서 악수해 주실 거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갑자기 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의 물결이 출렁였다. 행사 관계자들은 이들을 다독이며 통제선 안으로 돌려보냈다. 한국에선 이미 낯익은 풍경이지만, 이곳은 미국 워싱턴디시(DC). 지난 6월30일 미국 방문 첫 공식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참배하고 숙소로 돌아가던 문 대통령이 환영 인파를 발견하고 수행 차량을 멈추게 한 것이었다. 대통령 곁으로 가까이 가고 싶어하는 일반인들에게 능숙하게 대처하는 한국 경호원들과 달리, 미국 경호원들은 악수를 나누는 문 대통령 뒤에 바짝 붙어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미국 경호원들의 이런 표정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널리 퍼졌다.

취임 초부터 ‘열린 경호, 낮은 경호, 친근한 경호’를 표방한 문 대통령의 행보는 해외에서도 틈틈이 이어졌다. 지난 6일 독일 베를린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만날 때도, 문 대통령이 총리실 앞마당을 가로질러 나가자 ‘즉석 팬 미팅’이 열렸다. 비록 철문을 사이에 뒀지만, 담벼락만 넘겨보던 교민들은 대통령과 손을 맞대며 반가워했다. 문 대통령 뒤를 쫓아온 메르켈 총리도 덩달아 악수를 했다.

지난달부터는 청와대 앞길이 24시간 전면개방됐다. 청와대 앞 ‘종일 개방’은 1968년 1·21 사태 이후 49년 만이다. ‘열린 경호’는 단순히 경호 방식을 바꾸는 것을 넘어 ‘탈권위’와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한 문 대통령의 소신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5일 오후(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총리실에서 한-독 정상 만찬회담을 마치고 나오다 재독동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5일 오후(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총리실에서 한-독 정상 만찬회담을 마치고 나오다 재독동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열린 경호, 보안과 소통 사이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국민과 장벽을 만드는 경호를 대폭 낮춰 국민과 대통령이 가까이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 경호실이 권력 ‘보위’에만 몰두했던 것과는 정반대 개념이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창설한 ‘대통령 경호실’은 오랫동안 권력의 핵심부였다. 5·16 쿠데타를 함께 한 박종규·차지철 등이 경호실장을 맡았다. 197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씨 저격 사건 당시 대처가 미흡했던 이유로 어떤 이들은 경호실의 ‘권력 독점’을 꼽기도 한다. “당시 경호실은 비대했고 횡포가 심했다. 경호실은 행사 전 경찰에게 ‘우리가 다 할 테니까 우리의 지시가 있을 때만 움직여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때문에 경찰은 꼼짝도 않고 있었다”고 이건개 당시 내무부 치안국 부국장은 회고한다. 박정희 대통령부터 경호실 작전차장보 출신이기도 했던 전두환 대통령 때까지, 군 출신으로 짜인 경호실은 장세동 전 경호실장의 말마따나 신변뿐 아니라 “각하의 심기까지 경호”했다. 1988년이 돼서야 경호원 공개채용이 이뤄졌고,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군 출신이 아닌 전문 경호인이 처음으로 경호실장을 맡게 됐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걸쳐 ‘7급 공무원’(특정직)으로의 전환, 학력·병역 제한 완화, 여성 공채 등이 이뤄지며 경호실의 ‘닫힌 문’은 열렸다.

문재인 정부의 첫번째 개혁도 바로 경호실에서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날 이낙연 국무총리, 서훈 국정원장,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주영훈 경호실장 인선을 직접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경호 좀 약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22일 하루 연차휴가를 내고 경남 양산 자택에서 휴식을 취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오전 부산에 사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버스 좌석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22일 하루 연차휴가를 내고 경남 양산 자택에서 휴식을 취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오전 부산에 사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버스 좌석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주위를 불편하지 않게 하면서 ‘브이아이피(VIP)의 안전’을 지켜내는 것은 ‘열린 경호’의 오랜 과제였다. 노무현 대통령 때의 일이다. 2003년 프로야구 올스타전 때 시구하는 노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 주심 복장을 한 경호원이 2루에서 “눈에 띄지 않게” 대기했다. 한 스포츠신문이 ‘알고 보니 심판이 아니라 청와대 경호원’이라고 보도했고, 청와대는 이를 ‘열린 경호 차원에서 한 일’이라고 확인했다.(1982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개막전 시구 때는 심판뿐 아니라 내야 수비수들까지 모두 경호원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보수 언론이 발칵 뒤집혔다. 보안 사항 유출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소통’과 ‘보안’ 둘 다 놓칠 수 없는 ‘열린 경호’의 ‘딜레마’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문 대통령의 ‘열린 경호’는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취임 뒤 처음으로 대규모 인파가 모였던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행사 때 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시민들 사이를 걸어 정문인 ‘민주의 문’을 통과했다. 행사가 끝난 뒤 문 대통령 의전 차량과 구급차가 마주치자, 경호 쪽이 나서 문 대통령 차량을 갓길로 보내고 구급차를 앞세운 것도 화제가 됐다.

이와 함께 청와대는 지난 14일 경호구역 내에서 안전 조치를 취할 때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개정안에는 대통령뿐 아니라 일반 시민을 포함해 경호구역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할 법적 책임을 경호실에 부여하는 내용도 담겼다. 즉 대통령 참석 행사에서 테러나 화재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일반 시민이 위해를 입은 데 대한 법률상 책임까지 대통령 경호실이 지게 된다는 얘기다.

보다 은밀하게, 더욱 정확하게…

문 대통령이 공식 집무동 대신 비서관들이 일하는 여민관에서 함께 일하기 시작하면서 ‘전파 불통’도 사라졌다. 과거 대통령이 가까이 오면 휴대전화를 비롯한 무선 신호가 일제히 끊겼다. 혹시 모를 폭파 테러에 대비해 무선 기폭기 조작을 막는 일종의 ‘방해 전파’를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출입 통제가 이뤄지는 청와대 안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예전엔 대통령이 기자들이 근무하는 춘추관 쪽으로 접근하면 일제히 휴대전화와 무선 인터넷이 끊겨 대통령의 등장을 바로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열린 경호’는 오히려 보안 강화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지난 5월22일 연차 휴가를 내고 부산을 찾은 문 대통령이 버스를 타고 시내 한복판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시민은 많지 않았다. 주위를 에워싼 경찰차도 없고, 시커먼 방탄차량도 아닌, 차선을 지키며 빨간 신호 앞에 멈춰 있는 평범한 미니버스 안에 대통령이 타고 있을 것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까닭이다.

박준석 용인대 경호학과 교수는 “브이아이피의 동선이 알려지지 않고 주변이 통제된다는 전제하에, 1·2차선을 동시에 사용하는 ‘차선물기 주행’이나 신호조작 등이 없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경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테러범이 노리는 ‘목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내킬 때마다 민간 ‘암행 시찰’을 나가는 통에 경호원들이 준비에 애를 먹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아무도 대통령이 올 줄 몰랐기 때문에” 신변 경호 자체는 비교적 수월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져 내려온다. 반대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매일 아침 조깅을 즐기는 것이 널리 알려져 경호가 힘들었던 경우다. 빠르게 정보를 전파하는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의 등장으로 대통령 일정 보안을 지키기 어려워진 점은 경호의 새 과제가 되고 있다.

‘열린 경호, 낮은 경호’가 대비 태세를 약하게 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올해 5·18 기념식의 경우 사전 비표 없이 일반 시민들도 입장이 가능했지만, 대통령과 가까운 행사장 주변에 머무르는 참석자들은 사전 비표를 받고 소지품 검사도 거쳤다.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린 서울 광화문 고층 빌딩 곳곳엔 혹시 모를 저격 시도에 응사할 수 있도록 저격용 소총을 갖춘 경호 요원들이 배치됐다. 옥상에 올라 저격을 시도할 수 있을 만한 주변 고층 건물들도 출입이 통제됐다. 문 대통령이 ‘시민 속으로’ 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경호실은 ‘은밀하면서도 정확한’ 경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래시장은 서민들과 가장 가까이서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경호실 입장에선 칼·도마 등이 언제든 ‘흉기’로 돌변할 수 있는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경호원들은 상인으로 변신해 손수레를 끌거나 좌판에 앉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다.

문 대통령의 독일 순방에 동행했던 청와대 관계자는 “독일 총리실 앞에서 교민들과 즉석에서 만났을 때도 건물 담장 밖에서 경호원들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주영훈 경호실장은 “‘경호기법’상 공개할 수 없는” 안전점검을 마친 뒤, 문 대통령을 앞마당까지 직접 수행했다.

경호실 관계자는 “열린 경호일수록 철저한 사전검증과 현장 대응 전략을 갖추고 움직인다”고 말했다. 무조건 접근을 ‘차단’하는 방식의 경호보다 ‘선진 경호기법’이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지난 6월22일 청와대 앞길 개방을 설명하기 위해 경호실 역사상 처음으로 기자 브리핑에 나선 주영훈 경호실장은 “경호는 경호실만의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과학기술과 산업기술, 국방력의 집결이고 국력을 반영한다”며 “모든 것을 조합해 최고 수준의 경호를 이끌어내는 게 경호실과 경호실장 역량이다. 염려하시는 (안전) 부분은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통령의 소통 뒤에 숨은 과학이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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