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2일 경북 김천시 추풍령휴게소 경부고속도로 기념탑을 방문하고 있다. 추풍령휴게소 경부고속도로 기념탑은 대한민국 고속도로 제1호 휴게소로 경부고속도로 서울~부산 중간에 위치하며 박정희 정권의 성과로 기록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의 상징이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전두환 경제 성과 인정’ 발언을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여당 안에서도 “학살자의 공과를 재평가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과 함께 최근 이어지고 있는 이 후보의 ‘말 뒤집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후보는 12일 자신의 ‘전두환 발언’ 논란과 관련해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병폐가 흑백논리, 진영논리”라며 “있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 사회가 불합리함에 빠져들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게 100% 다 잘못됐다고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삼저호황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름 능력 있는 관료를 선별해 맡긴 덕분에 어쨌든 경제 성장을 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앞서 그는 지난 11일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적기념관 즉석연설을 통해 “전두환도 공과가 병존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3저 호황을 잘 활용해서 경제가 망가지지 않도록,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은 성과인 게 맞다”며 “다만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의 생명을 해친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는, 결코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될 중대 범죄다. 그래서 결코 존경받을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전날에 이어 전두환의 ‘경제 성과는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간 것으로, 전씨에 날을 세웠던 종전 입장보다 한층 유연해진 태도를 취한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는 호남분들이 많다”고 발언했다가 국민적 공분을 산 뒤 사과한 바 있다. 군사 반란을 통해 집권에 성공한 전씨가 폭력적 진압으로 수많은 광주시민들을 학살했고, 이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전씨의 공적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이 후보 역시 윤 후보의 ‘전두환 망언’을 거세게 비판했다. 그는 지난 10월22일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서 윤 후보의 발언을 겨냥해 “살인·강도를 했다는 사실만 빼면 좋은 사람일 수 있다. 무슨 말을 더 하겠느냐”, “우리 국민은 학살자 전두환을 잊지 않았고, 윤 후보가 전씨를 옹호했던 발언도 용서가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묘역 입구에 묻힌 ‘전두환 비석’을 여러차례 밟았다. 지난달 28일 광주 방문 때는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을 찬양하고 국민들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대한민국을 끌고 갈 수 없다” “철학도, 역사 인식도, 준비도 없는 후보에게 나라와 국민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 후보가 연이어 언급한 전두환씨의 ‘경제 성과’ 역시 당시의 노동 상황을 도외시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당시의 경제 호황은 세계적인 저달러·저유가·저금리(3저호황) 등 외부 환경 속에서, 전두환 정권이 민주노조를 파괴하고 저임금을 강요하는 등 노동자에 고통을 일방적으로 떠넘긴 결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후보의 ‘전두환 언급’은 중도·보수 표심을 잡겠다는 전략에서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그는 이번 대구·경북 방문 기간 내내 ‘보수 표심’에 구애하는 모습이었다. 이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평가는 갈리지만, 대구 경북이 낳은 매우 눈에 띄는 정치인”이라며 추켜세웠고,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농지개혁을 한 것 딱 하나는 칭찬받을 만하다”고도 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 “국민 모두가 치를 떠는 내란범죄자, 일말의 반성도 없이 떠난 학살자의 공과를 굳이 재평가하려는 것은 선거전략일 수도 없다”며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는 윤석열, 전두환이 경제는 잘했다는 이재명, 이분들 얘기만 종합하면 전두환씨는 지금이라도 국립묘지로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려다 국민의힘 후보가 되실 것 같다”고도 했다. 황규환 국민의힘 선대위 대변인은 논평에서 “말 바꾸기가 일상이 돼버린 이 후보가 이제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마저 손바닥 뒤집듯 바꾸고 나섰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석까지 밟으며 조롱했던 이 후보가 맞는지 눈을 의심케 한다”고 밝혔다.
이번 논란으로 당 안팎에선 이른바 ‘이재명식 유연성’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존의 강성 이미지에서 탈피한다는 전략이지만, 이 후보가 손바닥 뒤집듯이 철학과 소신을 바꾼다는 비판이 함께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정치인의 발언은 어느 정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너무 표를 의식해서 말을 자주 바꿔 정치적 소신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한 민주당 중진의원은 <한겨레> 통화에서 “국민장도 못 치를 정도로 대통령 예우도 받지 못할 정도의 인물인데, 공적을 얘기하는 것은 너무 나간 것”이라며 “아무리 표를 쫓는다지만, 우리가 근거를 두고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이고, 한계가 있는 것인데 매우 잘못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하기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했다.
심우삼 이재훈 기자
wu3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