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令夫人)은 본래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을 높여 이르는 말입니다. 하지만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시절 영부인이라는 단어는 대통령 부인에 대한 특별한 호칭으로 쓰였습니다.
대통령 가족에 대한 호칭은 꽤 민감한 사안입니다. 지나치게 높이면 권위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지나치게 낮추면 무례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대통령 부인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법률적 용어는 대통령 배우자입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최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청와대 제2부속실을 없애겠다”며 느닷없이 “영부인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했습니다. 선거운동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부인 김건희씨를 자꾸 뒤로 숨기려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김건희씨의 학력 및 경력 허위 기재 논란으로 공정과 상식이라는 자신의 대선 출마 명분이 흔들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12월23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윤석열 후보 지지도는 29%로 2주 전 36%에 비해 7%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38%에서 35%로 3%포인트 떨어졌습니다.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거나 모른다는 ‘태도 유보’가 17%에서 25%로 크게 늘었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윤석열 후보 지지자들이 일시적으로 지지를 철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 김건희씨를 둘러싼 논란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상임선거대책위원장 사퇴 영향일 것입니다.
김건희씨 논란과 이준석 대표 선대위 사퇴는 별개의 사안이 아닙니다. ‘김건희씨가 억울한 부분도 많다’고 생각하는 윤석열 후보와 ‘시시비비를 가려서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져야 한다’는 이준석 대표가 충돌하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도 이준석 대표와 비슷한 생각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윤석열 후보 뜻대로 배우자를 뒤로 숨기면 논란이 가라앉고 지지도가 다시 상승할까요? 아니면 이준석 대표나 김종인 위원장 생각처럼 당사자인 김건희씨나 윤석열 후보가 정면으로 대처해야 돌파할 수 있을까요?
권력 심장부에 동행하는 공적 존재…“국민 시선에 갇혀 살던 수인” 평가도
대선 후보 아내 검증 적정성은?
저는 이준석 대표나 김종인 위원장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선거는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국가 지도자를 뽑는 선거입니다. 후보의 배우자가 어떤 사람인지 유권자는 알 권리가 있고, 후보는 답변할 의무가 있습니다. 전국지표조사에서도 대선 후보 가족 검증이 당연하다는 응답은 68%, 부적절하다는 응답은 28%였습니다.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서 배우자는 선거운동뿐만 아니라 대통령 임기 동안 매우 중요한 공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배우자 엘리너 루스벨트는 퍼스트레이디 시절 빛나는 활동으로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퍼스트레이디’로 남아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하고 201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미국 최초로 부부 대통령이 탄생할 뻔했습니다. 퍼스트레이디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배우자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조은희 전 서울 서초구청장이 2007년에 출판한 <한국의 퍼스트레이디>라는 책이 있습니다. 대통령 배우자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특히 두 사람이 어떤 인연으로 만났는지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었습니다. 1933년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다가 스위스 제네바 호텔 식당에서 우연히 합석한 동양의 노신사를 만났습니다. 이승만 박사였습니다. 인연을 이어간 두 사람은 1934년 뉴욕에서 결혼했습니다. 무려 스물다섯살 차였습니다.
공덕귀 여사는 일본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조선신학교(현 한신대) 신학부 교수를 한 엘리트였습니다. 1949년 윤보선 서울시장의 구혼을 받아들여 결혼했습니다. 윤보선 시장은 쉰두살, 공덕귀 여사는 서른여덟살이었습니다.
육영수 여사는 1950년 부산에서 이종 육촌 오빠의 중매로 박정희 중령을 만나 대구에서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서른네살, 부인은 스물여섯살이었습니다. 1963년 남편의 대통령 당선으로 청와대 안주인이 됐지만, 1974년 서울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 도중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최규하 대통령 부인 홍기 여사는 충북 충주에서 한학자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안 어른들로부터 한문과 교양을 배웠습니다. 열아홉살이던 1935년 할아버지의 중매로 경성제일고보 학생이었던 최규하 대통령과 결혼했습니다. 당시 신랑은 열여섯살이었습니다.
이순자 여사는 아버지 이규동씨가 육군사관학교 참모장이었던 진해여중 2학년 시절 집에 드나들던 전두환 육사 생도를 만났습니다. ‘아저씨’와 ‘순자’는 몇년 뒤 연인이 됐습니다. 1959년 결혼을 위해 이화여대를 그만뒀습니다. 전두환 중위는 스물여덟살, 그는 스무살이었습니다.
김옥숙 여사는 1952년 경북여고 1학년 때 오빠(김복동)의 육사 동기인 노태우 생도를 만났습니다. 세살 차였습니다. 두 사람은 1959년 대구에서 결혼했습니다.
손명순 여사는 이화여대 재학 중이던 1951년, 서울대 철학과에 다니며 국회 부의장실에서 일하던 김영삼 대통령과 선을 보고 결혼했습니다. 스물네살 동갑이었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서울대 사범대를 나와 미국 유학을 하고 이화여대 사회사업학과 강사를 거쳐 대한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연합회 총무로 활동하던 엘리트였습니다. 마흔살 때인 1962년 김대중 대통령의 구애로 결혼했습니다. 이희호 여사가 한살 많았습니다.
권양숙 여사는 봉하마을에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노무현 대통령과 사귀다가 1973년 결혼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살 위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배우자가 없었습니다. 1974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 곁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김정숙 여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2년 후배였습니다. 법대 축제 때 파트너로 만나 7년 동안 연애하고 결혼했습니다.
저는 이번 기사를 쓰면서 대통령 배우자 이름 뒤에 모두 여사라는 호칭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한겨레>에서는 ‘여사’라는 호칭을 둘러싸고 논란이 좀 있었습니다.
<한겨레>는 창간 이후 대통령 부인을 표기할 때 ‘대통령 부인 ○○○씨’라고 했습니다. 여사라는 단어가 권위주의적 표현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 당선 뒤 2017년 8월부터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로 호칭을 바꿨습니다. 독자들이 ‘씨’를 존칭으로 생각하지 않고, ‘여사’라는 단어의 쓰임새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내용의 알림을 내보냈습니다.
내년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김혜경씨는 ‘대통령 부인 김혜경 여사’,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김건희씨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라는 호칭을 얻게 될 것입니다.
김혜경씨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의 소개로 이재명 후보를 만났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적극적인 청혼으로 두 사람은 1991년 결혼했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세살 위라고 합니다.
김건희씨가 윤석열 후보와 결혼한 사연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열두살 차이입니다. 김건희씨는 2018년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나이 차도 있고 오래전부터 그냥 아는 아저씨로 지내다가 한 스님이 나서서 연을 맺어줬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후보의 장모는 2011년 검찰 조사를 받을 때 김건희씨의 결혼 상대자에 대해 “결혼할 사람은 라마다 조(남욱) 회장이 소개시켜준 사람으로 2년 정도 교제하였습니다”라고 진술한 적이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와 김건희씨의 결혼 경위는 사생활이기 때문에 언론의 취재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최근 <경향신문>에 쓴 ‘김건희씨와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윤씨 부부는 검찰 제도의 산물이다. 이 진실을 왜 말하지 못하는가”라고 반대 논리를 폈습니다. 깊이 생각해볼 대목입니다.
유권자, 후보 배우자 문제도 알 권리…김건희씨 논란, 지지율 영향 끼친 듯
‘시선의 감옥’에서 삶은 행복할까?
대선 후보 배우자는 후보에게 기회 요인이 될 수도 있고 위협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후보와 배우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일까요?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대선 후보의 배우자인데도 지금처럼 세상이 시끄러운 것을 보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뒤표지에 실린 글을 소개하며 이번주 정치 막전막후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대한민국 퍼스트레이디, 그들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최고 통치자의 반려로 권력의 심장부에 동행하였고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권력의 정점에 고립된 대통령과 현실 세계 사이를 이어 줄 생생한 여론 전달자로서 커다란 역할을 한 한편, 국민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았던 수인이기도 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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