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개발 특혜 의혹으로 피해를 본 대장동 원주민들과 면담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등 성평등 기조와 거꾸로 가는 정책을 연일 내놓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하락하자 대선 승부처로 꼽히는 2030 남성을 겨냥해 나름의 전략적 행보를 펼친 것이다.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남녀 갈라치기’를 통한 분열의 정치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후보는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올린 데 이어, 8일 기자들과 만나 ‘양성평등가족부 공약이 바뀐 것인가’라는 물음에 “현재 입장은 여성가족부 폐지 방침이고 더는 좀 생각을 해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남녀 갈라치기라는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뭐든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란다”고만 답했다. 자신의 기존 공약까지 뒤집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 없이 여가부 폐지만 강조한 것이다. 윤 후보는 이후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가 맞다. 더이상 남녀를 나누는 것이 아닌 아동, 가족, 인구 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적었다.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주장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2030 청년세대의 지지도가 크게 낮아지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지지로 이동한 데 대한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리얼미터가 지난 3~4일 전국의 2030 유권자(18~39살) 1024명을 대상으로 벌인 대선 여론조사 결과(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를 보면, 윤석열 후보의 지지도는 18.4%로 나타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33.4%)에게 크게 뒤처졌을 뿐 아니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19.1%)와도 오차범위 안에서 박빙이다. 특히 20대(18~29살) 남성 유권자의 안 후보(31.1%)에 대한 지지도는 윤 후보(15.8%)를 갑절 가까이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의 승리를 견인했다고 평가받은 ‘청년층’의 지지가 윤 후보에서 안 후보 쪽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가부 폐지’ 카드는 이준석 당대표가 주장해온 ‘20·30 남성’을 주요 타깃으로 한 대선 전략에 힘을 실은 것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8일 페이스북에 “며칠 사이 여가부 해체 공약 및 여러 정책의 명쾌한 정리 과정을 보면서 많은 분이 급격한 속도감과 변화에 궁금해하신다. 선대위가 발전적 해체를 하면서 지금까지 당의 철학과 맞지 않는 개별 영입 인사들의 발언이 가져오던 혼란이 많이 사라진 모습”이라고 적었다. 윤 후보의 여가부 해체 공약 등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의 선대위 영입으로 등을 돌린 20·30 남성 표심을 되돌리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청년층 내부의 차이와 갈등에 대한 고려 없이 이수정·신지예 영입으로 20대 남성과 여성 표심을 동시에 잡으려 했던 ‘윤핵관’(윤석열 후보 쪽 핵심 관계자)식 ‘만물포용 정치’의 실패가 이준석식 ‘이남자 정치’를 위한 공간을 열어준 면이 있다”고 짚었다. 9일 발표한 ‘병사 봉급 월 200만원’ 공약도 20대 남성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윤 후보가 20대 남성들이 갖고 있는 여가부에 대한 반감을 적극 수용해 여가부 폐지를 전면화한 것은 여가부가 역차별을 주도하고, 급진 페미니즘 이념을 실행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그들의 왜곡된 주장을 그대로 확산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가부 폐지 주장의 핵심 근거 중 하나로 주구장창 얘기하는 건 게임 셧다운제”라며 “게임 셧다운제는 2011년 시행됐다. 이명박 정부 때다. 지금 윤석열 캠프에 합류한 신의진·손인춘 의원이 주도해서 만들어진 법이다. 그럼 셧다운제를 폐지한 건 누구일까. 권인숙 류호정 등 페미니스트 의원들이 나서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이남자 표심’만 쫓아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 없이 여가부를 일종의 희생양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윤 후보가 지난 6일 밝힌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주장 역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합리화’하는 공약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차 가해를 우려해 성범죄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성폭력특별법상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피해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윤 후보의 이런 퇴행적 행보가 실제 청년들의 삶을 개선할 정책을 논의할 기회를 차단하고 우리 사회를 ‘젠더 갈라치기’의 늪에 빠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여가부 존폐 찬반’ 프레임 자체가 성평등이나 2030 여성들이 제기하는 어젠다를 묻어버릴 수 있다. 인구 절반인 여성과 관련된 정책을 추진하는 중요한 정부 부처를 이렇게 가볍게 정치적 쇼잉에 쓰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도 “청년들의 삶을 개선할 정책은 내놓지 않으면서 일부 남성들의 분노 감정만 이용하는 것으로, 청년들을 오히려 (정치공학적으로) 납작하게 소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미나 임재우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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