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치기’는 원래 바둑 용어다. 넓게 펼쳐진 상대의 진 중앙에 돌을 놓아 세력을 둘로 나누고, 이를 통해 상대 움직임을 제한하는 공격 전술이다. 갈라치기가 정치권 용어로 정착한 건 2000년대 중반 이후다. 공식석상에서 처음 사용한 건 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의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 협상이 한창이던 2002년 11월, 정 후보 쪽이 단일화 방안으로 대의원 여론조사를 제안하자 노 후보는 “우리 당은 지난 (대선후보) 경선 후 많은 대의원이 (결과에) 불복하고 내게서 등을 돌렸다. 이런 옳지 않은 불복을 활용해서 당을 ‘갈라치기’하겠다는 것이냐”고 받아쳤다.
좁게는 ‘상대를 분열시키려는 이간책’의 의미로 사용되지만, 넓게는 ‘더 많은 유권자가 우리를 지지하도록 유리한 구도로 경계선을 긋는 전략적 행위’를 일컫는다. 전략적 행위로서의 갈라치기를 마냥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흔히 선거의 3대 변수로 인물·정책·구도를 꼽는데, 갈라치기는 ‘구도’를 짜는 일과 관련된다. 선거에서 승리는 항상 더 많은 유권자 집단을 자기 진영의 경계 안으로 끌어가는 쪽에 돌아간다. 그러니 전략적 선 긋기, 정교한 갈라치기가 필수다.
갈라치기의 성공 여부는 기존의 갈등 구도를 대체할 효과적 갈등 프레임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예컨대 정치적 갈등이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면, 산업·노동·복지 분야 이슈를 중심으로 갈등 구도를 재편해 ‘지역 대 지역’이 아닌 ‘노동 대 자본’, ‘복지 세력 대 시장 세력’의 구도로 정치적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갈라치기가 그 자체로 ‘악’은 아니라고 해도, 동원할 갈등 이슈를 선택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이슈가 사회경제적 격차나 정치이념의 차이가 아니라 성·인종·종족 등 생물학적 정체성과 관련될 때 특히 그렇다. 자칫 현실에서 작동하는 편견과 혐오, 차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약속이 여기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는 각자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국민 다수의 실질적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슈가 아닌 건 분명해 보인다.
이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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