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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대선 불복’ 20년째 도돌이표, 승자독식 막을 개헌 필요하다

등록 2022-02-06 08:59수정 2022-02-06 09:16

[한겨레S]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대선 후보들의 개헌 의지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 주최한 대선 후보 토론회가 열린 3일 서울 <케이비에스>(KBS) 스튜디오에서 심상정 정의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왼쪽부터)가 토론회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 주최한 대선 후보 토론회가 열린 3일 서울 <케이비에스>(KBS) 스튜디오에서 심상정 정의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왼쪽부터)가 토론회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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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1987년 대선, 1992년 대선, 1997년 대선까지 선거에서 진 정당과 지지자들은 선거 결과에 대체로 승복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부터는 달랐습니다. 한나라당이 당선무효 소송을 냈습니다. 전국 244개 개표소 가운데 80여 곳에서 재검표를 했습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나라당은 사과하고, 소송을 취하했습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김무성 의원은 2003년 9월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2004년 3월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습니다.

2007년 대선이 끝난 뒤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숨죽이고 살았습니다.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워낙 큰 차이로 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08년 4월 광우병 사태가 터졌습니다. 사람들은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와 촛불집회를 했습니다. 대개 야당 지지층이었습니다.

2012년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전임자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졌고, 이듬해 사람들은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도 광화문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대개 야당 지지층이었습니다.

2017년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 때는 일부 극렬 야당 지지자들이 광화문과 청와대 주변에서 오랫동안 주말마다 시위를 벌였습니다. 2019년 조국 사태가 터지자, ‘내로남불’에 분노한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부분 보수 야당 지지층이었습니다.

이처럼 2002년 이후 당선된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야당의 대선 불복이나 야당 지지자들의 광화문 집회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2022년 3월9일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는 대통령은 어떻게 될까요? 같은 운명을 겪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야당 지지층이 자꾸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대통령의 실정 때문이지만 좀 더 깊은 바탕에는 대선 불복 심리가 잠재해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대선 불복 심리는 뭘까요?

대통령제 구조적 문제 ‘대선 뒤 분열’

한마디로 내가 찍지 않은 정치인이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갖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제라는 제도 자체가 대선 불복을 구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셈입니다.

대통령제 원조 국가인 미국에서도 최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황준범 전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이 지난 1월19일치 신문에 쓴 기사에서 글로벌 컨설팅회사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의 말을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미국인 절반이 지난 대선을 도둑맞았다고 여기는 상황에서는 다른 나라에 선거를 어떻게 치르라고 말할 수 없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수출하는 게 아니라 수입해야 한다.”

저는 이번 대선이 끝난 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지지자들의 상대 후보에 대한 적대감이 위험 수준을 넘었습니다. 최근 디지털 공간에 나도는 글과 영상을 보면 상대 후보 당선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전제 아래 극한 수준의 인신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은 윤석열 후보를 ‘무당’이라고 부르고, 윤석열 후보 지지자들은 이재명 후보를 ‘사기꾼’이라고 부릅니다.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가 승복을 선언해도 지지자들은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둘째,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공약 중에는 비현실적인 것이 너무 많습니다.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공약, 국회 동의를 받기 어려운 공약, 한반도 균형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공약이 난무합니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공약 불이행은 당선자나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당선자나 대통령이 작은 실수만 저질러도 다른 당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이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올 수 있습니다. 걱정입니다.

대선 이후 정국이 통합이 아니라 분열로 치닫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개헌해야 합니다. 분열과 적대의 정치는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을 놓고 싸우기 때문에 벌어집니다. 절대권력을 약화해야 합니다. 대통령 권력을 국회와 지방으로, 국무총리와 장관들에게 분산해야 합니다.

1월18일치 <한겨레> 25면 ‘왜냐면’에 고성원 메시지 컨설턴트의 ‘임기단축 개헌 공약을 기다린다’는 글이 실렸습니다.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민주주의를 심화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누구도 기득권을 주장할 수 없는 지금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하는 ‘4년 중임제 개헌’을 각 후보들이 공약하는 방안도 검토해주었으면 한다. 현행 헌법에 따라 당선되는 신임 대통령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기 5년에서 1년 임기를 단축하고, 개헌 이후 새 헌법에 따라 당선되는 대통령부터는 ‘중임제’를 통해 책임성을 부과하는 제도 말이다.

공교롭지만 정치 일정상으로 행정권력을 선출하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같은 해에 치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년 터울을 두고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의 선출 시기가 교차하면서 상호 견제하는 효과도 기대해볼 만하다. 지배적인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 정부’가 아니라 ‘○○○ 행정부’를 만들어낼 기회이기도 하다.”

후보들 ‘권력분산 약속’해야

저는 이 제안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선거 일정은 3월9일 대선 뒤 곧바로 6월1일 지방선거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국가 재정과 정치 에너지의 낭비요, 비효율의 극치입니다. 이런 정도 일정을 여야가 타협해서 조정해내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무능합니다.

신기하게도 고성원씨의 제안과 똑같은 내용으로 이재명 후보가 1월18일 <엠비엔>(MBN) ‘백운기의 뉴스와이드’에서 개헌 의사를 밝혔습니다.

“책임정치를 위해서는 권력이 좀 분산되는 4년 중임제로 가야 합니다.”

“1인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권한을 일부 분산하고, 감시 견제 장치를 강화하고, 기본권도 강화하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지방선거, 총선, 대통령선거가 계속 엇갈리고 있습니다. 임기를 조정해야 하는데, 이번에 제가 되더라도 임기를 1년 단축하는 개헌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대선 주자들은 이재명 후보의 개헌 제의에 대해 탐탁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다음날 <시비에스>(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4년 중임제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며 “먼저 분권형 개헌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후보 자신이 4년 중임제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개헌 얘기를 하면 국민이 진정성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개헌 논의 자체에 대해 아예 부정적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개헌 논의가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심상정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4년 중임제 개헌 의사는 저의 정치 인식과 상반된다. 의회가 통법부로 전락한 게 문제다. 양당 기득권 정당의 의회 독과점이 문제다. 양당 체제를 그대로 존속시키는 토대 위에 대통령제 8년은 단언컨대 그걸 감당할 대통령이 나올 수 없다”고 못을 쾅쾅 박았습니다.

맥이 풀린 이재명 후보는 “질문이 있어서 소신을 말한 것이고 특별한 계획을 가진 건 아니다. 임기를 줄여서라도 할 수 있다면 하겠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물러섰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선 전 개헌 공론화는 거의 물 건너갔습니다.

큰일입니다. 이런 상태로 3월9일 대통령선거를 치르면 2002년 이후 작동한 ‘승자독식-패자불복’ 프레임이 재연될 것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머지않아 광화문에 야당 지지자들이 쏟아져 나와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광경을 또다시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개헌해야 합니다. 대선 직후 곧바로 개헌 논의를 시작해서 다음 대통령 임기 초에 개헌해야 합니다.

<중앙일보>가 지난 1월29일치 신문에 ‘제왕적 대통령 종식,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사설을 썼습니다. 지금 당장 모든 후보가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안을 제시하라는 주문입니다. 저는 이 사설에 찬성합니다.

개헌 본격 논의라도 시작해야

대한민국헌정회(김일윤 회장)와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이상수 대표)가 공동으로 2월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선주자 초청 개헌 토론회를 합니다. 대선 주자들 가운데 누가 참석할지는 아직 불투명합니다.

이 토론회에는 ‘제10차 개헌을 위한 헌법개정절차법안’이 제안될 예정입니다. 3월9일 대통령선거 뒤 6개월 안에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1년 동안 국민 의사를 수렴해 헌법개정안 기초안을 만들자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현재의 대통령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돼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운전자라도 고장 난 자동차를 몰면 사고를 피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3월9일 선거에서 당선되는 20대 대통령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개헌해야 합니다. 자신의 재임 중 안전과 퇴임 후 안전을 위해서라도 개헌해야 합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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