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더 케이 호텔에서 열린 ‘공정과 국민통합의 대한민국-전북과 함께’ 신년인사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당선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라는 자신의 발언에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사과를 요구하자 정치보복할 뜻이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당선되면 어떤 사정과 수사에도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부당한 선거개입이라며 반발하는 한편, 여권 결집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이날 재경 전북도민 신년인사회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 문 대통령께서도 늘 법과 원칙에 따른 성역없는 사정을 늘 강조해오셨다. 저 역시도 권력형 비리와 부패에 대해서는 늘 법과 원칙, 공정한 시스템에 의해서 처리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려왔다. 그런 면에서 우리 문 대통령과 저와 똑같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며 “윤석열 사전에 정치 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제가 이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어떠한 사정과 수사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는 말씀을 지난 여름부터 드렸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과할 의사가 없냐”는 거듭된 질문에도 “문 대통령과 내 생각이 같다라는 말씀”이라는 답변만 거듭했다. 자신의 발언은 원론적인 내용이었다며 “근거 없이 적폐수사의 대상으로 몰았다”는 문 대통령의 사과 요구에 한발 비켜선 것이다. 윤 후보는 ‘문재인 정권의 대표적인 적폐가 뭐냐’는 질문에는 “오늘은 그 얘기를 안 하는게 좋을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윤 후보는 문 대통령과의 정면충돌을 피했지만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의 반응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노골적인 대선 개입 시도’라며 반발했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정권을 막론하고 부정한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공정하게 진행했던 우리 후보가 문재인 정부도 잘못한 일이 있다면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론을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 청와대가 발끈했다”며 “원칙론에 대해서 급발진 하면서 야당 후보를 흠집내려는 행위는 명백한 선거개입에 해당한다. 앞으로 28일간 청와대가 야당 후보를 사사건건 트집잡아 공격하려고 하는 전초전이 아니길 바란다”고 적었다. 이양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어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 수사의 원칙을 밝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향해 사과를 요구한 것은 부당한 선거 개입으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여권의 지지층 결집을 가져올 수 있는 문 대통령의 사과 요구를 ‘대선 개입 시도’로 반격하며 방어막을 친 것이다.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의 공개 사과 요구를 이 후보의 지지율 정체를 극복하기 위한 국면전환용 카드로 해석하고 있다. 여권 지지층 기저에 깔린 ‘노무현 트라우마’를 자극해 이재명 후보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는 강성 친문 지지층 결집을 노렸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관계자는 <한겨레>에 “지지율이 안 오르니까 ‘정치보복’이라는 키워드로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막판에 청와대까지 나선 게 아니겠나. 마음이 급하다는 방증”이라면서도 “윤 후보를 지지했던 강성 친문 지지층을 노린 것인데, 그들의 표심이 의도대로 움직일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사과 요구가 여권 지지층을 끌어모을 수 있지만, 반작용으로 ‘정권 심판론’을 자극해 야권 결집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선 이상, 정권 심판론과 정권 유지론의 진영 대결 구도가 더욱 뚜렷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친문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서 청와대가 묘수를 꺼내든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야권 지지층을 더욱 결집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문 대통령과 전면으로 맞서는 구도가 부각되면, 정권 심판론으로 화력이 옮겨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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