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사전투표 이틀째인 5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 마련된 사전투표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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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겨우 따라잡았는데…”
지난 3월3일 아침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 선언 직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민주당은 오래전부터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를 걱정했습니다. 두 사람의 단일화가 이뤄지면 아무래도 대선 승리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통합정부를 내세우며 안철수 후보에게 끊임없이 구애한 배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최소한 안철수 후보가 윤석열 후보와 손잡는 것만은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민주당의 전략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가 대선 판세에 영향을 어떻게 미칠까요? 3월4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는 단일화 전인 2월28일, 3월1일과 2일 사흘 동안 한 것입니다. 이재명 40%, 윤석열 40%, 심상정 2%, 안철수 9%로 나왔습니다. 3월4일 발표한 지상파 방송 3사 여론조사는 3월1일과 2일에 한 것입니다. 이재명 37.1%, 윤석열 42.1%, 심상정 1.8%, 안철수 7.4%였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역대 대선에서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인 마지막 일주일 동안 1등과 2등이 뒤바뀐 적은 없었습니다. 안철수 후보 지지자 가운데 절반만 윤석열 후보를 찍어도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크게 앞섭니다. 후보 단일화 밴드왜건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조금 더 커졌습니다. 민주당 의원들도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전국지표조사의 내용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지역별로는 이전 여론조사와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서울에서 이재명 후보가 36%로 윤석열 후보(40%)를 많이 추격했고, 호남에서 이재명 후보 지지도가 72%로 결집했다는 정도가 눈에 띕니다.
연령별로는 18~29살, 60대, 70살 이상에서 윤석열 후보가 앞섰습니다. 30, 40, 50대는 이재명 후보가 앞섰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18~29살에서 20%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지도가 높습니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던 18~29살 유권자들은 이제 누구를 찍을까요? 흥미로운 관찰 지점입니다.
여러분은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이번 단일화가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두 사람의 단일화를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두 엘리트 집단의 결합으로 읽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두 사람이 대학에 진학할 당시 문과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은 서울대 법대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이과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은 서울대 의대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서울법대를 나온 윤석열 후보는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를 하다가 검찰총장까지 지낸 초엘리트입니다. 안철수 후보는 서울의대를 나왔지만, 의사의 길을 걷지 않고 사업에 투신해 부와 명예를 쌓은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두 사람의 단일화 선언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 저는 손발이 좀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희 안철수·윤석열 두 사람은 오늘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시작으로서의 정권교체, 즉 ‘더 좋은 정권교체’를 위해 뜻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저 안철수는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습니다.” “저 윤석열은 안철수 후보의 뜻을 받아 반드시 승리하여 함께 성공적인 국민통합정부를 반드시 만들고 성공시키겠습니다.”
두 사람의 발언과 표정은 마치 혼인 서약을 하는 신랑 신부처럼 보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장면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슈퍼 엘리트의 길을 밟아온 윤석열 후보, 안철수 후보와 비교하면 이재명 후보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공장에 다니며 툭하면 두들겨 맞던 소년공이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 자격은 검정고시로 땄습니다. 중앙대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성남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했습니다. 소년공이라는 밑바닥에서 출발해 대선주자까지 올라선 특이한 인물입니다.
우리나라 대선에서 비주류 출신 정치인이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비주류 출신 후보가 주류 출신 후보를 이긴 경우가 많았습니다.
목포상고를 나온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법대-대법관 출신 이회창 후보를 꺾었고, 부산상고를 나온 노무현 대통령이 이회창 후보를 꺾었습니다. 2017년 대선에서 이긴 문재인 대통령도 비주류 출신으로 봐야 합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서울법대 출신으로 처음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주류 엘리트 출신 후보가 비주류 바닥 출신 후보를 꺾는 것입니다.
선거 지형과 구도를 살펴보면 이번 대선은 10년 전인 2012년 대선과 여러 면에서 매우 닮았습니다.
첫째, 선거 지형이 기본적으로 야당에 유리합니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기 때문입니다. 2012년에도 그랬습니다. 후보들의 지지도는 다릅니다. 2012년에는 여당 후보였던 박근혜 후보의 지지도가 야당 후보들에 비해 높았습니다. 이번에는 야당 후보가 대체로 앞서가고 있습니다.
둘째, 선거 도중 유력한 제3후보가 갑자기 철수했습니다. 2012년에 철수한 제3후보는 안철수 후보였습니다. 2022년에 철수한 제3후보도 안철수 후보였습니다. 10년 만에 꼭 같은 상황에서 꼭 같은 선택을 한 후보가 동일한 인물입니다. 정치에서 참으로 보기 드문 희한한 장면입니다.
셋째, 양강 구도입니다. 결국 2012년 대선은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가 사실상 일대일로 겨뤘습니다.
두 후보의 지지자들도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은 박정희 향수로 무장한 노년층이었습니다.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는 젊은층이었습니다. 노년층 팬덤과 젊은층 팬덤의 대결이었습니다. 노년층 팬덤이 더 강했습니다.
이번에도 양강구도입니다.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를 포함해 ‘2강 1중’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양강구도입니다. 지지층 연령대는 10년 전과 좀 다릅니다. 4050은 이재명, 6070은 윤석열 후보 지지가 높습니다. 2030은 유동층입니다.
넷째, 야당 후보가 급조됐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2011년 12월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히며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2012년 6월에야 대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늦깎이 정치인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3년 12월에 펴낸 <1219 끝이 시작이다>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솔직히 저와 민주당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파탄에 분노하는 시민들, 역사의 퇴행을 걱정하는 시민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염원하는 시민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많은 시민들이 우리와 함께했습니다. 시민들이 우리의 부족을 메워줬습니다. 시민들이 나서서 선거운동을 이끌어 줬습니다. 정치에 들어선 지 불과 몇 달 안 된 제가 민주당의 후보가 된 것도 순전히 그 힘 덕분이었습니다.”
여기서 민주당을 국민의힘으로, 시민을 국민으로, 이명박 정부를 문재인 정부로 바꾸면 윤석열 후보가 이번에 쓴 글처럼 됩니다. 참 신기하지요?
자, 그렇다면 이제 2022년 대선 최후의 관심사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그랬듯이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 위기를 극복하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 것인지 여부일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쉽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2012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에도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것은 보수층에 광범위하게 포진하고 있던 박정희-박근혜 팬덤 덕분이었습니다.
사실은 2002년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투표 전날 밤 정몽준 후보의 지지 철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노사모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팬덤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정치 막전막후 ‘대선 막판 분수령은 양당 지지층의 절박감’ 기사에서 저는 2002년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의 절절한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어느 독자가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2002 대선 생각난다. 아내가 첫아이 낳고 3주밖에 안 되어 투표 안 하려 했는데, 정몽준 지지 철회 날벼락. 그 추운 12월19일 산후조리 중인 아내는 투표하러 가더라. 눈물이 났다.”
어떻습니까? 팬덤의 특징은 위기를 맞았을 때 오히려 더 강력한 지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강력한 팬덤의 존재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재명 후보에게는 2012년 박근혜 후보나 2002년 노무현 후보처럼 강력한 팬덤이 형성돼 있는지 좀 의문입니다.
이재명 후보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투표일까지 특별히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후보나 의원들의 시간이 아니라, 당원과 지지자들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국민과 유권자들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국민이 하는 것”이라며 “역사와 국민을 믿는다”고 말한 것도 바로 그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3월9일 대선의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