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10일 오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선대본부 해단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4만7077표, 0.73%포인트 차이. 민심은 절묘했다. 유권자들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도 지지를 몰아주지 않고 역대급 박빙 드라마를 연출했다. 두 후보 모두 제대로된 정책 비전을 보여주지 못 한 가운데, 네거티브전에만 골몰하자 유권자들이 어느 한쪽에도 마음을 몰아주지 않는 방식으로 ‘견제구’를 던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유권자들은 대선을 통해 윤 당선자가 압도적 표차로 정권을 잡으면 폭주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시민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보면서 안보나 평화 문제가 단순히 구호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하지만 윤 당선자의 모습을 보면서 협치 없이 홀로 국정을 잘 운영할 거라는 기대를 접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이 올해 들어 9차례나 미사일을 발사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외교안보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윤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이에 대한 대안과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정부·여당을 ‘운동권 세력’으로 규정하며 막말에 가까운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과 ‘음모론’으로 일관했다.
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로 대변되는 ‘젠더 갈라치기’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세력에 대해 비아냥대는 방식으로 일관하는 ‘오만한’ 정치에 대해서도 경고장을 보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선거 초반에는 이준석식 ‘이대남’ 마케팅이 보수 언론 등에 의해 보수 정치의 변화로 포장되면서 여성들의 민심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선거 후반, 이준석식 갈라치기가 더욱 노골화하고, 윤 당선자가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드러내자 불안한 2030 여성 들이 이 후보 쪽으로 결집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혐오에 편승하는 오만한 정치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렇게 성공하지 못한 정치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면 5년 뒤 반대쪽으로 정권교체가 재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철 교수도 “한국의 국민적 정서가 권력이 오만한 걸 굉장히 싫어하는데, 이준석 대표가 그런 부분을 자극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와 민주당 역시 2030 여성들과 호남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면서도 정권교체론을 극복할만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데 실패했다.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갈등 상황에서 민주당이 내로남불식 독선 정치를 보였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방관하는 정치를 보여줬는데, 이 후보가 이런 상황을 극복할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새로움을 앞세울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김민하 평론가는 “이 후보는 추진력이나 결단력이 남다르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저런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여겨졌는데,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이 불거지면서 추진력과 결단력이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점도 이 후보가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요한 이유가 됐다. 김 교수는 “이 후보가 대장동 의혹에서 기득권 담합 구조를 깨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혁파하겠다는 걸 국가적 비전으로 내세웠어야 했는데, 성과에 기반한 유능함 등 실용적으로만 접근해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대 정당 모두 선거 기간 내내 혁신하는 모습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네거티브와 갈라치기로만 일관한 점도 유권자들이 양쪽 모두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은 이유가 됐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민주당은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하고 난 뒤에 성찰과 변화가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 했다”며 “이번 선거 내내 윤 당선자 가족에 대한 네거티브로 일관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하는 캠페인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윤 당선자 또한 정권심판론만 외치면서 자신이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며 “양쪽 다 남한테만 변하라고 외치면서 자신들은 혁신하지 않으니 민심을 모두 얻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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