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경제 6단체장들과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제동을 걸자, 당장 22일로 예정된 국무회의에서 예비비 지출 승인을 받아 이전 작업을 시작하려던 윤 당선자 쪽과 국민의힘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 했다. 윤 당선자 쪽은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대표적인 정권 인수인계 업무의 필수사항에 대해 협조를 거부하신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면서도 “5월10일 0시부로 윤 당선인은 청와대 완전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막겠다면 본인도 임기 시작과 동시에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얘기다. ‘5월10일 청와대 개방’이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계획을 거듭 선언하며 문 대통령의 제동에 감정을 드러낸 것이어서, 향후 대통령-당선자 회동은 물론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험로가 예상된다.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은 이날 ‘새 정부 출범 때까지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겠다는 계획은 무리’라는 청와대의 입장이 나온 직후 “안타깝습니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대표적인 정권 인수인계 업무의 필수사항에 대해 협조를 거부하신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현실을 인정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뒤이어 “윤 당선인은 통의동에서 정부 출범 직후부터 바로 조치할 시급한 민생문제와 국정 과제를 처리해나갈 것”, “5월 10일 0시부로 윤 당선인은 청와대 완전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안보 불안을 이유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이동에 동의할 수 없다는 문 대통령에 대해 결국 분통을 터뜨리며 청와대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는 윤 당선자의 의지를 거듭 확인시킨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국민의힘 국방위원들의 성명으로도 이어졌다. 이들은 “국가안보의 가장 기본은 대통령에 대한 신변 경호”라며 “대통령이 집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경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야말로 대한민국 안보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다. 안보공백을 내세워 예산편성을 거부하는 청와대의 행태는 새 정부 출범을 방해하는 발목잡기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윤 당선자가 청와대에 절대 안 들어가겠다고 했으니, 문 대통령이 새 집무실 이전을 거부하는 건 윤 당선자를 위해에 빠뜨리는 것’이라는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인수위 관계자도 “결국 새 정부에 협조를 안 하겠다는 것 아니냐. 청와대 협조 없이는 국무위원을 다 바꾼 다음에야 추진이 가능한데 그때까지 버티겠다는 뜻으로 읽힌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윤 당선자가 집무실 이전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취임도 하기 전에 정국을 경색시켰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찬반여론이 갈리는 상황에서 굳이 용산 이전을 급하게 결정해서 비판의 빌미만 준 것 아니냐”며 “우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나 엠비(MB) 사면 등 여러 이슈가 있었는데, 오히려 청와대가 우리에게 책임을 떠넘기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한 차례 취소됐던 문 대통령과 윤 당선자의 회동 논의는 집무실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노출되면서 또 다른 암초를 만나게 됐다. 이날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자 비서실장이 만나 회동 일정을 조율했지만 별 소득 없이 헤어졌다고 한다. 이날 두 사람의 실무 협의는 청와대가 ‘집무실 이전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기 이전에 진행된 것이어서, 분위기는 다시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그러나 윤 당선자의 새 정부 구상에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며 대화를 희망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오늘의 문제 제기는) 우리 정부의 아주 모범적인 인수인계와는 별개의 것”이라며 “(집무실 용산 이전에 따른) 안보 공백 문제에 대해, 거기서 생각하는 안보 공백과 우리가 생각하는 게 일치하는지 만나서 이야기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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