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앞 천막 기자실을 방문해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24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검찰 공약에 반대 입장을 밝혀왔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문제삼아 이날 오전 예정됐던 법무부 업무보고를 돌연 취소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한국은행 총재·감사위원 선임 문제로 촉발한 신구 권력 충돌 전선이 검찰권 강화를 내세운 당선자 공약과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꺼내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고리로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당선자도 “이 정부에서 검찰개혁을 5년간 해놓고 그게 안 됐다는 자평이냐”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며 전면에 나섰다.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위원들은 이날 오전 9시 서울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 당선인 공약에 대해 40여일 후에 정권교체로 퇴임할 장관이 부처 업무보고를 하루 앞두고 정면으로 반대하는 처사는 무례하고 이해할 수 없다.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법무부에 업무보고 유예를 통지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9시30분에는 법무부, 오전 11시에는 대검찰청 업무보고가 예정돼 있었다.
업무보고 전날 박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윤 당선자가 공약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에 대해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아직 필요하다”며 반대 뜻을 밝혔다. 또 검찰의 독자적 예상편성권 공약에 대해서는 특수활동비 사용내역 공개 등을 전제로 여지를 남기면서도 “입법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를 두고 인수위원들은 “박 장관이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려는 윤 당선인의 진의를 왜곡했다”며 법무부 업무보고를 전격 취소한 것이다. 인수위는 업무보고 방향을 수정해 오는 29일 이전에 다시 보고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윤 당선자 공약에 찬성 입장을 밝힌 대검 업무보고는 이날 그대로 진행했다.
인수위원인 검찰 출신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업무보고 연기는 인수위원들이 결정한 것이지 윤 당선인 의중과는 관계 없다”고 했다. 정치인 출신인 박 장관이 대선 직후부터 여러 차례 ‘공약 반대’ 입장을 밝혀 왔고, 인수위 역시 전날 “법무부 장관의 반대 입장”을 언급하며 대검과 분리해 업무보고를 받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갑작스레 이를 다시 문제삼은 것은 전날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선임 문제 등을 두고 청와대와 충돌한 윤 당선자 뜻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거대 야당 원내대표’ 선출을 앞둔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출범 전에 ‘검수완박’ 등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밝힌 것이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인다. 대선 전 민주당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추진하던 ‘검수완박’이 여러 논란을 일으키자 검경 수사권 조정 효과를 지켜보자며 중단 또는 속도 조절에 들어간 상태였다. 이와 관련해 윤 당선자는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을 만나 “이 정부에서 검찰개혁이라는 것이 검찰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한 것이다. 5년간 해놓고 그게 안 됐다는 자평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에) 독립적 권한을 주는 게 더 중립에 기여한다. 장관 수사지휘권은 별로 필요 없다”며 공약 이행 의지를 밝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법무부 업무보고를 전격 취소한 2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법무부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부처는 당선자 국정철학 등 새 정부 정책기조에 부응하는 방향의 업무보고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는 점에서 퇴임을 앞두고 이를 막아선 박 장관의 태도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과거 인수위 역시 전 정권 정책과 기본방향이 다를 때는 따로 간담회와 과제별 티에프(TF) 등을 구성해 이견을 좁혀 나가는 방식을 취하지 업무보고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인수위가 법무부 업무보고를 다시 받겠다고 했지만 법무부 검사들이 ‘윤석열 인수위’가 원하는 업무보고를 다시 만들어 보고하기 힘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 정책기조와 180도 반대되는 내용을 정치인 출신 박 장관이 승인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법무부 업무보고가 무산되는 사상초유 상황도 거론된다. 법무부 업무보고에는 인수위가 재보고를 요구한 검찰권 외에도 범죄예방정책, 여성아동인권, 교정, 출입국 등 민생·치안과 직결되는 주요 사안도 포함된다. 검찰권 강화 문제에 민생 사안이 뒷전으로 밀린 셈이 됐다. 박 장관은 이날 오전 업무보고 취소 및 보고내용 수정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오늘은 침묵하겠다. 저는 말씀을 다 드렸다”고 했다. 이후 퇴근길에 업무보고 내용을 수정했는지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는 “특별한 변동사항은 없었다”고 밝혔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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