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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복습뉴스] 또 갈라치기…이준석의 ‘장애인 시위 비판’은 문명적인가

등록 2022-04-01 15:09수정 2022-04-01 15:34

20여년 전부터 이어진 ‘장애인 이동권’ 오랜 투쟁
이 대표, 시민피해 내세워 비판…당 안팎 ‘갈라치기’ 우려

※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전국장애인차별연대(이하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비판하면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번 주 ‘복습뉴스’에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 이와 관련된 이 대표 발언의 위험성을 정리했습니다.

박원순의 약속?

이 대표는 3월25일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 하의 박원순 시정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했던 약속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세훈 시장이 들어선 뒤에 지속적으로 시위를 하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라는 글을 적어 전장연을 겨냥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정파성을 의심하며 지적한 ‘박원순 시정의 약속’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2002년 약속한 내용을 재확인한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1월 경기 오이도역, 2002년 서울 발산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오이도역 사망 사고는 6개월이 채 안 된 수직형 리프트 철심이 끊어지면서 일어났고, 발산역 사망 사고는 리프트의 기계 결함이 원인이었다.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은 리프트를 ‘살인기계’라고 부르며 개선을 요구했다.

당시 활동가들은 처음으로 지하철 선로에 내려가 시위를 진행했다. 장애인단체들은 목에 쇠사슬을 걸고 거리로 나왔다. 39일에 걸친 단식 투쟁도 진행했다. 결국 서울시는 ‘장애인이동권보장 종합대책’을 통해 2004년까지 모든 서울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약속은 기한 내 지켜지지 않았다. 이 약속이 이행되지 않자 서울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이던 2015년 12월3일 ‘장애인 이동 편의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 및 세부실천 계획’을 발표하며 다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약속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2022년까지 지하철 전 역사 엘리베이터 100% 설치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2017년까지 마을저상버스 도입
승강장과 열차 간 바퀴 빠짐 방지 등

이렇게 약속한 뒤에도 리프트 사망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017년 서울 신길역에서 장애인 승객이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전장연은 당시에도 ‘지하철 연착 투쟁’을 진행한 바 있다. 지속적인 시위와 요구에도 약속은 여전히 이행되지 않은 상태다. 2022년 2월 기준으로 ‘1역사 1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서울 지하철역은 모두 21곳이다. 1역사 1동선은 엘리베이터 등을 이용해 지상 출구부터 지하철 승강장까지 하나의 동선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엘리베이터 한 대 설치에 21개월이 소요되는 것을 고려하면 올해까지도 약속 이행이 불가능한 셈이다. 이에 전장연은 지난해 12월6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를 벌여왔다.

이미지 제작 채반석 기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맥락 자른 악의적 영상 공유

전장연 시위가 이어지자, 이준석 대표는 페이스북에 “할머니 임종 지키러 가야 된다는 시민의 울부짖음에 버스 타고 가라고 응대하는 모습, 더 이상 이걸 정당한 투쟁으로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라며 일명 ‘할머니 임종 방해 영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해당 영상에서 한 시민이 “할머니 임종을 보러 가야 한다”고 하자,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버스 타고 가세요”라고 답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그러나 문제의 영상은 인터넷에서 뒤를 잘라내고 편집해 배포한 영상이었다. 당시 이 회장은 10여초 뒤 울먹이면서 “작년 7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응급실에서 임종이 임박했으니 빨리 오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제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임종을 못 봤다. 그래서 그 마음을 안다. 정말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또 해당 영상을 공유한 것 자체가 장애인 혐오라는 비판도 같이 제기됐다. 영상 공유로 논란이 생기자 이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그런 엄청난 말을 해놓고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사과하는 부분이 포함 안 되었을 뿐입니다. 그런 걸 조작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반박했다.

시민들 갈라치는 차기 여당 대표

이 대표는 “서울경찰청과 서울교통공사는 안전요원 등을 적극 투입하여 정시성이 생명인 서울지하철의 수백만 승객이 특정단체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합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적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여당을 이끌어야 할 대표가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경찰의 강경한 대응을 주문한 셈이다.

이외에도 이 대표는 3월27일 페이스북을 통해 “결국 불편을 주고자 하는 대상은 4호선 노원, 도봉, 강북, 성북 주민과 3호선 고양 은평 서대문 등의 서민 주거지역”이라고 특정 지역을 언급하며 시민들을 갈라쳤다. 또 3월28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선량한 시민의 불편을 야기해 뜻을 관철하겠다는 비문명적 방식”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불법 시위 장애인’ 대 ‘선량한 시민’의 구도를 설정한 것이다. 이 대표의 이런 발언을 두고 시민 간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당 대표가 오히려 시민을 ‘갈라치기’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대표는 ‘법정 단체’ 여부로 장애인단체들을 가르는 태도도 보였다. 이 대표는 3월28일 최고위원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전장연이라는 장애인 단체의 투쟁 방식이 강력한 거지, 5개 (다른 장애인) 법정 단체보다 대표성이 약하다”고 말했다. 전날 페이스북에 “전장연이 장애인 단체로서 특별하게 대한민국 장애인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것도 아니다”라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3월29일에는 페이스북에 전장연 시위를 비판한 지체장애인협회의 영상을 공유하며 “지체장애인협회와 긴밀하고 진지한 정책적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겠습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장애인 법정단체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3월28일 성명을 내어 “얼마 뒤면 여당 대표로 국가 의전서열 7위에 등극하는 지도자가 장애인 시위에 공권력 개입을 주문했다. 한 나라 정당 대표의 장애인식이 잘못 돼도 너무 잘못됐다”며 “대안 없이 갈등을 조장하는 대표는 자질을 잃었다”고 이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경복궁역 3호선 승강장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장애인 권리예산 반영을 요구하기 위해 출근 시간대 지하철 시위를 시작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시위에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안내견과 함께 참석했다. 김예지 의원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대신해 사과하며 무릎을 꿇기도 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경복궁역 3호선 승강장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장애인 권리예산 반영을 요구하기 위해 출근 시간대 지하철 시위를 시작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시위에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안내견과 함께 참석했다. 김예지 의원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대신해 사과하며 무릎을 꿇기도 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당 안팎에서 잇따르는 지적

이러한 이 대표의 발언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선을 긋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3월28일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참여해 “헤아리지 못해서, 공감하지 못해서, 적절한 단어 사용으로 소통하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정치권 대표해서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한 뒤 무릎을 꿇었다. 김 의원은 앞서 3월2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준석 대표는 당대표지만 이 대표의 발언은 당론도 아니고, 당의 입장도 아니다. 개인의 입장일 뿐이다. 그것이 참 부끄러운 일 중 하나다”라며 “당 대표의 잘못된 단어 선택으로 인해서 우리당 당론처럼 보이게 되는 것은 큰일이다. 섣부른 판단과 언어 사용을 통해서 오해나 혐오를 조장하는 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성숙한 반응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중앙장애인위원장인 이종성 의원도 “(이 대표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대립이라든지, 공권력 등의 발언이 장애인 단체의 감정을 자극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임태희 대통령 당선자 특별고문도 3월29일 밤 <교통방송>(tbs)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이 대표의 행보를 두고 “정치인으로는 선을 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장애인들이 이동권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여러 가지 요청을 할 때는 성의를,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정말 경청하고, 이분들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또 발언할 때도 정말 상대방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헤아리면서 했어야 한다”며 “이제 여당 지도자, 당대표 아니냐”고 했다.

이 대표 발언과 관련해 여론이 나쁘게 흘러가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여파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나섰다. 인수위 사회복지문화분과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과 김도식 사회문화복지분과 인수위원은 3월29일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 현장에 찾아가 간담회를 가졌다.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은 다음날인 30일 오전 서울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한 윤 당선자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장애인분들의 이동권 문제는 20년 넘게 그분들께서 간절히 바란 것”이라며 “윤 당선자는 대선 후보 시절 저상버스 도입 등을 포함해 장애인 이동권을 지키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공약이 이행되도록 하는 것도 저희의 과제이자 의무이고, 그 마음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대표가 이동권 확대를 약속했던 윤 당선자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어서, 당 내에서도 이 대표가 자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고 전했다.

채반석 기자 chaib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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