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제13차 코로나비상대응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나라가 빚더미”, “곳간 밑에 싱크홀(땅 꺼짐)이 있다”는 등의 발언을 내놓으며 재정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세수 확대에 소극적이었던 현 정부에 화살을 돌려, 당장 수백조원이 필요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공약 수정을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수위 관계자는 18일 <한겨레>와 만나 “재정 상황이 박근혜 정권 초만큼 좋지 않다”며 “코로나19를 겪으며 국가채무까지 많이 늘어난 터라 그때보다 사정이 더 나쁘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경제는 엉망이고 나라는 빚더미이고 국민은 허리가 휘는 상황”이라고 포문을 연 뒤, 인수위 내부에선 “곳간 열쇠를 넘겨받아 하나하나 열어봤는데, 밑에 싱크홀이 있는데 살짝 덮어놨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인수위 쪽에서 비교 대상으로 삼는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인 지난 2013∼2014년 2년 내리 ‘세수 결손’(정부 예상보다 세금이 덜 걷히는 것) 사태를 겪었다. 직전 이명박 정부가 적극적인 감세 정책을 펼친 까닭에 곳간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집권 초기 2년간 세수 결손액이 19조원에 달하며 기초연금 등 핵심 공약마저 후퇴해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첫해 세금이 예상보다 16조원 넘게 더 들어오는 ‘세수 풍년’을 맞이했고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최근 2년 사이에 7차례 추경을 편성하며 지출을 대폭 확대했다. 하지만 추가세수 확보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지난해 부동산 등 자산시장 호황과 경기 회복 덕분에 부쩍 늘어난 세수 증가세가 올해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그 흐름이 계속되리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경기 둔화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세수 펑크를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 유가 및 곡물가 급등 등 대외적으로도 세수 감소 요인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윤 당선자의 대선 공약 200개를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은 5년 간 266조원이다. 미국·독일·영국·프랑스 등 주요국이 코로나19로 불어난 정부 지출을 최근 다시 죄는 것과 ‘엇박자’인 셈이다. 특히 윤 당선자 쪽은 증세 없이 전체 공약 재원의 절반에 가까운 116조원을 세수 자연 증가분으로 충당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재정지출을 통해 윤 당선자의 공약을 지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인수위가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적극적으로 들고 나오는 게 주요 공약 후퇴의 명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갑자기 물가가 상승하는 등 여러 가지 경제 상황이 안 좋아 (‘코로나 손실 보상’ 공약의 이행액을) 50조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인수위에서 나왔다”며 “원안대로 가게 되면 경제적 충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최대한 온전한 보상의 범위와 경제적 충격이 없는 부분에 대한 것을 조정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의 ‘50조원 손실보상’ 공약을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을 내비친 것이다. 정부 재정 사정에 밝은 한 관료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늘린 재정 지출을 다 삭감해도 새 정부 중반쯤엔 세입 확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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