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앞줄 왼쪽)가 29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IFEM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연설을 듣고 있다. 마드리드/연합뉴스
한·일 정상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급속도로 밀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 28일(현지시각)부터 이틀간 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5차례 대면하고 양국 관계 개선을 목표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9일 한·일 정상 만남에 대해 “‘보텀업’(아래에서 위로)이 아니라 ‘톱다운’(위에서 아래로) 방식으로 정상끼리 (한-일 관계를 풀) 준비가 다 돼 있는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28일 밤 스페인 국왕 주최 환영 만찬에서 처음 기시다 총리를 만나 “(7월10일)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한-일 간 현안을 조속히 해결해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위해 노력해주시는 것을 알고 있다. 더 건강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호응했다. 두 정상은 29일 한·미·일 정상회담, 아시아·태평양 파트너 4개국 정상 회동, 나토 사무총장과의 기념촬영,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 등에서도 얼굴을 맞댔다. 윤 대통령은 현지에서 진행한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테핑)에서 “기시다 총리와 한·일 현안을 풀어가고, 양국 미래의 공동 이익을 위해 양국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그런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오는 4일 출범하기로 하는 등 실제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조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정상화에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다만 한·일이 구상하는 관계 개선과 대북 공조 등의 방식이 동일한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기시다 총리는 29일 한·미·일 정상회담 들머리 발언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도발이 적극적으로 저지되기를 바란다”며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관한 대응 훈련과 공동 훈련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방위력 강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어떤 종류 훈련인지 한·미와 논의된 적이 없다”면서도 “비전투, 순수 인도적 재난 구호 쪽에 국한한 한·미·일 간 군사훈련 사례는 많다. 참관단을 서로 보내 한·미 훈련을 일본이 보는 것도 과거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미·일 안보협력은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 문제 , 평화헌법 구조의 제약 문제 때문에 시일이 걸리고 점진적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당장 실현 가능성은 작게 봤지만, 문은 열어두는 듯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도 일본이 ‘한국의 해법 마련’ 요구만 고수한다면 실제 관계 개선까지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정부 또한 과거사 문제에서 피해자 동의와 충분한 여론수렴 없이 일본과 밀착 행보를 이어갈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안보 협력을 앞세운 관계 개선이 일본의 군사력 확장 정책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기시다 정부는 5년 안에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인 방위비를 2%로 올리려는 공약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미·일 군사동맹 참여와 일본의 한반도 개입에 대한 질문을 받고 “유사시 들어올 수도 있는 거지만 꼭 그걸 전제로 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한편, 이날 스페인 방문 일정을 마친 윤 대통령은 1일 귀국할 예정이다.
마드리드/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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