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광주 서구에 있는 카페 `싸목싸목'에서 시민들이 양금덕 할머니에게 '우리들의 인권상'을 수여하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외교부는 일제강점기에 이뤄졌던 강제동원 행위가 인권 침해라고 보시기는 한 건가요?”
지난 8일 진행된 외교부 백브리핑(기자회견 뒤 비공식 질의응답)에서 나온 기자들의 질문이다. 이날 브리핑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된 피해자로, 30년째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재판 투쟁’을 해온 양금덕 할머니의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이 외교부 요청으로 돌연 보류된 직후 열렸다.
백브리핑에서 기자들은 “상훈법 어디에 사전 협의를 하라고 되어 있느냐”, “외교부가 왜 인권상 수여의 관계 부처냐” 등 ‘서훈 보류 사태’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나 외교부 관계자는 줄곧 “차관급 협의에서 사전조율하는 것으로 돼 있다”거나 “절차상 문제를 제기한 것뿐”이라는 동문서답을 반복했다. 이런 태도 탓에 급기야 강제동원문제를 대하는 외교부의 진의를 의심하는 물음까지 나왔다.
지금껏 외교부는 강제동원 문제 관련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일본과 얽힌 외교 문제인 탓에 자세한 설명을 하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다.
11일 시민들이 양금덕 할머니에게 수여한 '우리들의 인권상'.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문제는 당사자인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조차 정부로부터 어떤 소식도 전해 듣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 쪽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정부와의 소통이 사실상 단절됐다고 말한다. 이들은 오히려 기자들에게 “강제동원 문제 논의가 어떻게 되고 있느냐”며 묻는 상황에 이르렀다.
외교부가 분기별로 진행하는 피해자 쪽과의 면담은 외교부의 일방적인 결정을 설명하는 자리가 됐다. 외교부는 지난 8일 광주에서 진행한 피해자 지원 단체와의 면담에서도 ‘양 할머니의 서훈을 왜 막았느냐’는 항의에 “서훈에 반대하는 것은 아닌데 절차상 관계 기관과 사전 협의가 필요했고, 관련 보고를 늦게 접해 의견을 냈다”라고 해명할 뿐이었다.
정부가 일본만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다시 홀로 섰다.
외교부가 보류한 ‘인권상’도 이들 스스로 수여하기로 했다. 피해자 지원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 모임은 11일 광주의 한 카페에서 양 할머니에게 시민들이 만든 ‘우리들의 인권상'을 수여했다. 12일은 2019년 대한민국 인권상을 ‘외교부의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수상한 고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장이 별세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