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일본 정부의 방위비 증액과 적기지 공격 능력 명시화에 대해 “일본을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며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취임 뒤 줄곧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조해온 윤 대통령이 3국 공조의 강도를 한층 높이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침략과 식민지배 등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일본의 행태를 묵인한 채 일본의 군사 대국화 움직임을 너무 쉽게 합리화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 마무리 발언에서 “머리 위로 (북한)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핵이 올 수 있는데 그걸 막기 쉽지 않다. (그러니까) 방위비를 증액하고 소위 반격 개념을 국방계획에 집어넣기로 하지 않았느냐”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말 국제질서와 안보 상황 변화를 이유로 국가안보전략을 개정해, 유사시 북한·중국 등 주변국 미사일 기지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을 명시했다. 새 전략에는 방위비 대폭 증액, 자위대 재편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평화헌법 자체 개정은 아니지만, 전후 70여년간 유지된 전수방위(공격을 받았을 때만 방위력을 행사) 원칙을 형해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개정안 발표 때부터 일본 내부에서 제기됐다.
또한 한반도 유사시 미군 함정이 북한의 공격을 받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 미국이 원하면 일본 자위대가 ‘집단적 자위권’에 따라 북한에 반격할 수 있다는 논리로도 연결되면서 우려가 적지 않았다. 이에 한국 외교부는 “한반도 안보 및 우리의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사전에 우리와의 긴밀한 협의 및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양국 협의가 제대로 이뤄질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뒤따른다.
윤 대통령은 취임 뒤 한-일 관계 개선을 외교 목표로 세우고 △미래 협력관계 구축 △셔틀 외교 복원 등을 타진해왔다. 그는 취임 첫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일본은 이제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으로 규정했고, 지난해 9월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는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해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 등을 한-일 안보 협력, 경제·무역 문제 등 현안과 함께 전부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그랜드바겐(grand bargain·일괄 타결) 방식”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후 관계 개선은 생각만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유엔 총회 참석을 계기로 성사된 2년9개월 만의 한-일 정상회담을 일본 정부는 ‘간담’으로 규정하면서 ‘굴욕 회담’ 논란이 일었다. 정부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에 속도를 내려 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일본 총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지 한국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아무리 한-일 간 역사 문제 등 풀어야 할 여러 과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재무장 문제를 이렇게 쉽게 합리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김미나
mina@hani.co.kr 신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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