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7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지금 우리 국민들이 북한에 대해서 잘 모른다”며 “북한 주민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이, 또 전 세계 사람들이 북한 인권의 실상과 북한의 정치·사회 상황을 알고 공유한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도 실상을 정확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이런 발언은 올해 ‘북한 인권 문제’ 공론화에 힘을 쏟겠다는 예고로 읽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업무보고 마무리 발언을 통해 “통일은 갑자기 찾아오겠죠. 그러나 준비된 경우에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며 “감성적 접근보다 냉철한 판단과 준비에 (통일부가) 좀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당부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통일은 더 나은 쪽으로 돼야 하지 않겠냐”며 “북한이 남쪽보다 더 잘 산다면 그쪽 중심으로 돼야 할 것이고, 남쪽이 훨씬 잘 산다면 남쪽의 체제와 시스템 중심으로 통일이 되는 게 상식 아니겠냐”고 말했고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전했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밝혀왔는데, 윤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흡수통일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북한 인권은 북한 비핵화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라며 “(윤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우리가 널리 퍼뜨리게 되면 그 내용은 결국 돌아서 북한 쪽에도 환류가 될 수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권 장관은 ‘북한 주민의 인권 향상’을 통일부의 올해 7대 핵심 추진 과제의 3순위 과제로 꼽으며 “탈북민 강사를 통한 북한 실상 강연과 교육을 더욱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는 아울러 ‘북한 인권 현황 연례 보고서’(국문·영문)를 매년 발간하고, 북한인권재단 출범 전까지 통일부가 실질적 재단 역할을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북쪽 당국은 유엔 인권 결의 등 외부의 ‘인권 문제’ 제기를 “가장 정치화된 적대적 수단”이자 “주권 침해 행위”라며 비난·반발해온 터라,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 공론화에 나설 경우 남북 사이 갈등의 불쏘시개가 될 위험이 있다.
또 권 장관은 윤 대통령이 ‘준비된 통일’을 주문한 것과 관련해, 상반기 중 ‘통일미래기획위원회’(통일장관 직속 자문기구)를 꾸려 ‘신통일미래 구상’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신통일미래 구상은 1994년 발표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세부 내용을 채우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권 장관은 덧붙였다. 1990년대 초반 ‘비대칭 탈냉전’ 이후 역대 정부는 남북관계가 좋을 땐 ‘평화’를, 남북관계가 나쁘고 ‘북한붕괴론’이 힘을 얻을 땐 ‘통일’을 강조해온 경향이 있다.
이날 업무보고에선 윤석열 정부의 공식 대북·통일정책인 ‘담대한 구상’ 추진 의지도 재확인됐다. 북한 비핵화에 맞춰 경제·민생 지원을 한다는 이 구상의 이행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권 장관은 밝혔다. 다만 권 장관은 “지금은 북한이 무력 도발로 얻을 게 없다는 점을 분명히 깨닫도록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라며 “북한에 회담을 새롭게 제의하는 것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보훈급여금 인상률을 과거 5년 평균 인상률인 4.3%보다 높은 5.5%로 책정한다고 밝혔다. 또 박민식 보훈처장은 텔레비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극 중 ‘유진 초이’의 실존 인물로 알려진 고 황기환 지사의 유해를 100년 만에 미국 뉴욕 퀸스 매스페스의 공동묘지에서 고국으로 오는 4월17일 봉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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