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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일본에 책임 안 묻고…윤 “우리가 변화 준비 못해 국권상실”

등록 2023-03-01 19:19수정 2023-03-07 14:06

윤 대통령 ‘삼일절 기념사’로 본 역사인식
‘식민지배, 내부 책임론’ 주장 떠올리게 해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내놓은 제104주년 3·1절 기념사는 지난해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의 연장선에 있다. ‘과거’보다는 ‘미래’에 무게를 둔 한-일 관계 개선과,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고리로 한 국제사회와의 연대 강화가 그 뼈대다. 하지만 이날 기념사에 한·일 과거사와 국내외 정세에 대한 윤 대통령 개인의 인식은 담겨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 방향은 읽어내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낭독한 기념사에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대신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제 식민지배가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우리 내부 책임이란 주장으로 읽힌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10월 페이스북을 통해 주장한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는 과거사 인식을 떠올리게 한다.

윤 대통령은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제대로 준비”해야 할 과제로 △세계적 복합 위기 △북핵 위협을 비롯한 엄혹한 안보 위기 △우리 사회의 분절과 양극화 위기 등 3가지를 꼽았다. 이어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간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한·미·일 협력’을 대외정책의 핵심으로 꼽아왔다. 지난해 5월21일 발표한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도 “북한의 도전에 대응하고, 공동 안보와 번영을 수호하며, 공동의 가치를 지지하고,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이란 문구가 등장한다.

‘한·미·일 협력’을 위해선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확정판결(2018년 10월) 이후 꽉 막힌 한-일 관계부터 풀어야 한다. 정부가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법 마련을 위해 지난해 7월부터 네차례 민관협의회를 여는 한편 한-일 외교당국 간 교섭을 이어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난 2월 들어 한·일 양국은 차관회담(13일)과 장관회담(18일)까지 거쳤지만, 강제동원 관련 협상은 답보 상태다. 정부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한 ‘제3자 변제’ 방식을 해법으로 제시했지만, 사죄와 배상 참여 등 기대했던 일본 쪽의 ‘성의 있는 호응’은 뒤따르지 않고 있다. 일본 쪽은 여전히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협력 파트너로 변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일본은 이제,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으로 규정한 바 있다. 두 연설문 모두 ‘강제동원’은 언급하지 않았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8일 기자들에게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법과 관련해 구체 시점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서도 “진정성 있는 소통을 바탕으로 해서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말해, 막바지 단계임을 내비쳤다.

이런 가운데 나온 윤 대통령의 “협력하는 파트너” 메시지는 강제동원 문제에서 일본 쪽의 전향적 태도를 촉구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외교가에서는 정부나 일본 쪽의 결단에 따라 이르면 이달 중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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