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사는 상당 부분이 “가짜뉴스”, “날조”, “거짓 선동”, “사기꾼” 등 격한 단어로 채워졌다. 민주주의 정신을 기리는 국가 기념일에 통합 대신 특정 상대에 대한 거친 비난으로 편가르기를 거듭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 상당 부분을 할애해 △가짜뉴스 △허위 선동 △협박 △폭력 △돈에 의한 매수 등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거짓 선동과 날조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전체주의를 지지하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현 정부에 비판적인 야당이나 노동계, 인권 단체, 언론 등을 가리킨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노동운동을 위장해 이념운동을 하는 세력 등 국정운영을 하며 겪었던 문제들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위기를 명쾌하게 전달하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민주주의는 독재와 폭력 돈에 의한 매수로 도전 받을 수도 있다”는 원고에 없던 윤 대통령의 발언은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에 놓인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장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참석한 터였다.
윤 대통령이 가짜뉴스를 국정 추진의 방해물이라고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7일 신문의날과 지난달 29일 민주주의정상회의에서도 각각 “허위 정보와 선동은 의사 결정을 왜곡한다”, “온라인을 타고 확산되는 가짜뉴스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가짜뉴스는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어 국민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날 발언의 톤이 유달리 격했던 것은 최근 20%대로 떨어진 지지율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갤럽의 지난 11~13일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5개월 만에 20%대(27%)로 떨어졌다. 지난해 대선 득표율 48.56%과 비교하면 20%가량의 지지층이 떠난 셈이다. 지난해 4·19 기념식에서 윤석열 당시 당선자의 기념사는 “목숨으로 지켜낸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국민의 삶과 일상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소중하게 지켜나갈 것”라는 내용의 온건한 톤이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지지율 하락의 상당 부분이 야당과 비판적인 언론,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등의 선동 탓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 뒤 비판이 고조되자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부산에서 한 주요 정부 인사들과 저녁자리 논란과 김건희 여사 관련 각종 비판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 주변에는 “가짜뉴스 탓”이라는 기류가 짙다.
박상병 시사평론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야당을 폄하하는 대통령의 4·19 기념사는 처음 본다. 대통령 기념식 축사로는 천박한 수준”이라며 “민주주의 가치를 기반으로 야당 등에 적극성을 보여야 하는데 외려 갈라치기와 편가르기를 한다”고 말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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