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디시(DC) 국회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하는 과정에서 미국 의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각)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우리나라 시민단체와 야당을 겨냥해 논란이 됐던 연설문 일부를 국제 무대에서도 반복하며 ‘자유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가치 외교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북한에는 인권을 빌미로 비난 수위를 높이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지지해 중국을 자극하는 메시지도 담아 긴장을 높였다는 평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낮 워싱턴 하원본회의장에서 합동 연설을 하며 자유를 46차례 언급했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수호, 전파자를 자임하는 미 의회에서 거듭 자유를 부각하며 발맞추려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세계 도처에서 허위 선동과 거짓 정보가 진실과 여론을 왜곡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며 “허위 선동과 거짓 정보로 대표되는 반지성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법의 지배마저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상하원 양당 의원들 앞에서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부정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은폐와 위장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는 불과 열흘 전인 지난 4·19일 기념식에서 야당과 시민사회로부터 “기념사가 아닌 선전포고”라는 반발을 부른 연설문 구절과 흡사했다. 당시 그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자유의 위기”라며 “거짓 선동, 날조 등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독재와 전체주의 편을 들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를 세계 곳곳에서 봐 왔다. 거짓과 위장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 의회라는 외교무대 연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의 발언은 자유민주주의 세력을 위협하는 권위주의 국가들을 에둘러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여러차례 ‘공산 전체주의 세력’이란 말을 비판적으로 사용했다.
특히 그는 “한미 동맹은 이제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글로벌 동맹으로 발전했다”며 “대한민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는 ‘자유의 나침반’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향후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등을 열쇳말로 삼아 미, 일과의 가치 외교를 강화하고, 중, 러 등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뜻을 공표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대북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다루는 미국 의원들 앞에서 인권 문제를 앞세워 북한을 격하게 비난했다.
윤 대통령은 실질적 비핵화 단계에서 경제적 지원을 시작하겠다는 자신의 대북정책 ‘담대한 구상’을 거론하면서 “정부는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문은 열어둘 것”이라고 했으나, 이어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어겨 총살당한 사례 △한국 문화 콘텐츠를 시청·유포해 공개 처형당한 사례 △성경을 소지하고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공개 총살당한 사례 등을 언급했다. 북한이 가장 민감해 하는 인권 문제를 10년 만의 미 의회 연설에서 직격하면서 대화와 협상을 촉구하는 대신 ‘강 대 강’ 대응을 강조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미국 맞춤형’ 대중 견제 메시지도 내놨다. 그는 중국 견제에 여야 구분이 없는 미 의회를 향해 “대한민국은 포용·신뢰·호혜의 원칙에 따라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한-미 동맹이 작동하는 무대 또한 확장되는 것”이라고 미국의 인태 전략을 강력히 지지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28일 “편협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주관을 (미국에서도) 확대 재생산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도 “윤 대통령 연설에 대한민국의 국익은 보이지 않았다”며 “행동하는 동맹을 부르짖으며 미 의회 박수를 받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가상의 적은 비난할 수 있어도, 국익을 위해 호소하는 것은 어려웠느냐”라고 논평했다.
보스턴/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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