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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엄마, 경찰은 권력의 지팡이야?…아이는 이제 알아버렸다

등록 2023-06-04 13:45수정 2023-06-05 11:10

[한겨레21]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시위 진압도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도
윤 대통령 한마디에 마지노선 무너지나
지난달 31일 새벽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 고공 농성장에서 경찰과 소방대원이 농성하던 한국노총 금속노련 간부를 진압봉으로 제압하고 있다. 한국노총 동영상 갈무리
지난달 31일 새벽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 고공 농성장에서 경찰과 소방대원이 농성하던 한국노총 금속노련 간부를 진압봉으로 제압하고 있다. 한국노총 동영상 갈무리

어떤 ‘공기’ 같은 게 있다. 처음엔 낯설어도 차츰 익숙해져버리는 느낌이나 분위기.

북한이 자칭 우주발사체를 쏜 날 새벽, 빼~ 하는 서울시의 경계경보 알림과 뒤이은 행정안전부의 ‘오발령’ 알림으로 꿀잠을 깼다. 그 내용 없음과 우왕좌왕에도 놀라지 않는 나에게 놀랐다. 언제부터 이 나라에 위기 대응 컨트롤타워가 없는 걸 당연하게 여겼을까? 경찰이 시위 현장을 찾은 노동조합 간부의 뒷목을 무릎으로 찍어누르며 뒷수갑 채우는 모습을 보고, 고공농성 중인 노조 간부를 강제로 끌어내리려 곤봉으로 내리치는 모습도 봤다. 아메리카도 아닌 코리아에서 말이다. 연일 엄정 대응 으름장을 놓더니…. 법 집행 경찰과 관계 공무원이 불이익받지 않게 하겠다고 윤석열 대통령이 역설한 지 불과 일주일 만이다. 어쩌자고 이런 ‘공기’는 이리 빨리 퍼질까.

그래도 절대 익숙해져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이 있다. 자신과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자가 아니면 공권력이 비무장 민간인에게 위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내 아이가 유아 시절 텔레비전 뉴스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 장면을 보던 모습이 떠오른다. 동공이 순식간에 커지더니 혼란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경찰이 왜 사람을 때려? 십수 년이 지나 또 보게 됐다. 아이는 이제 경찰은 어떤 정권이냐에 따라 그럴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급속히 무너지는 선이 또 있다.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거나 착취하는 것을 합법화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기준선 말이다. 최근 정부가 저출생의 유일한 해법인 양 밀어붙이려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방안을 보면서 우리가 큰 갈림길에 섰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2023년 5월23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3년 5월23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생활고에 목숨을 끊거나 전세사기로 좌절하는 이가 속출하는 세상에서, 숱한 젊은이가 사람대접 못 받고 부당한 갑질에 시달리는 환경에서 이제 대놓고 노예를 부리자는 건가. 노예제가 사라진 건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대하거나 써먹는 걸 제도와 법규의 틀 안으로 가져와 보장해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실상 계급사회이고 양극화가 심해졌어도 그 정도 ‘합의’는 이루고 ‘도리’는 지켜왔다. 그런데 중뿔난 몇몇 위정자가 얼렁뚱땅 그 기준을 무너뜨리려 한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이런 움직임에 앞장서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아예 최저임금 적용도 안 받도록 하는 관련 법안을 내놓았다. 1970년대부터 입주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둔 싱가포르를 모델로 한다. 고도성장기 아시아의 부자 도시국가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을(아울러 납세를) 북돋우려 시작한 제도를 느닷없이 세월과 바다를 건너 저성장기에 저출생 대책으로 들고나왔다. 바닥을 기는 그 나라의 출생률을 보고나 하는 소리인지.

누구를 온전히 돌본 적 없는 이들일수록 쉽게 돌봄의 값어치를 매긴다. 돌봄의 사회화를 외주화로 둔갑시킨다. 언어와 정서가 통하건 말건 애를 싸게 봐줄 사람이 있으면 많이 낳을 거라는 허접하고 억지스러운 발상은 윤 대통령의 독려로 힘을 얻었다. 서울시는 2023년 하반기에 100명을 시범 채용한단다.

애 볼래, 밭맬래? 아이를 키워봤거나 가까이서 본 사람은 땡볕에도 밭에 나간다. ‘돌봄계’에 내려오는 정설 같은 얘기다. 이렇게 키운 내 아이가 밥벌이할 때, 옆에서 같은 노동을 하는 이가 내 아이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 건 싫다. 내 아이가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 건 더 싫다. ‘나쁜 공기’가 퍼져나가면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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