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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대통령이면서 정치를 안 한다…윤, 독선의 ‘거부권 폭주’

등록 2023-06-04 07:30수정 2023-06-05 11:11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83

박정희 이후 자제됐던 대통령 권한
윤 대통령, 야당 입법 번번이 제동
공영방송법·노란봉투법도 수순
대화·타협 없이 정무 판단도 혼자
윤석열 대통령이 5월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이 5월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것은 지난 4월4일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한 간호법에 대해 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것은 5월16일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가로막혀 차례차례 폐기되는 처참한 운명을 맞았습니다.

다음엔 어떤 법안일까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그다음엔 어떤 법안일까요? 하청·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원청과 직접 교섭하고,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이 될 것 같습니다.

국회 다수 세력인 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주도적으로 법률안을 의결하면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 법률안을 폐기하게 하는 수순이 공식처럼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당론 정하고 ‘조자룡 헌 칼 쓰듯’

윤 대통령이 지금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두르는 법률안 거부권은 헌법 53조 2항이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권한입니다. 법률안 재의 요구권이라고도 합니다.

법률안 거부권은 입법부의 권한인 법률 제정권에 대통령이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한 예외적 권한입니다. 재의 요구 법안을 국회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하면 법률로 확정할 수 있지만, 국회가 이러한 특별의결정족수를 충족하기는 어렵습니다.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남용하면 국회의 입법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거부권은 매우 특별한 경우에 매우 신중하게 행사돼야 합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66건이었지만 대다수가 이승만 대통령 때(43회)였습니다. 박정희 7회, 노태우 7회, 노무현 6회, 이명박 1회, 박근혜 2회였고, 김영삼·김대중·문재인 대통령은 거부권을 한차례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 거부권 행사가 별로 없었던 이유는 국회 다수파와 대통령 소속 정당이 대체로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또 대통령이 국회의 입법권을 가급적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어떤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인지 명문 규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도의 취지에 비춰 볼 때 거부권 행사에는 정당한 사유와 필요성이 있어야 합니다.

헌법학자인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은 <헌법학>에서 “집행 불능의 법률안, 국익에 어긋나는 법률안, 정부에 부당한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률안, 위헌적 법률안 등”을 예로 들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이 이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주로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는 쟁점 법안 가운데 우리 사회 보수 기득권 세력의 이해와 어긋나는 법안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쟁점 법안에 대한 국민의힘 당론은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윤 대통령이 직접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윤 대통령은 자신이 반대하는 법안에 대해 별다른 고민 없이 반사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지난 4월10일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지난 4월10일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여소야대’ 두 대통령의 차이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국정 운영에 야당의 협조를 제대로 구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대통령 정치 부재’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왕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정치인입니다. 정부·여당, 즉 여권의 실질적인 중심입니다.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야당과 대화와 타협, 즉 정치를 해야 국정이 돌아갑니다. 대통령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이 바로 그렇습니다.

하물며 여소야대입니다. 대통령이 정치를 하지 않으면 국정이 마비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자신을 국가의 원수, 행정부 수반, 즉 통치자로만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를 자신의 책무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습니다.

윤 대통령처럼 심한 여소야대 상황에 놓였던 전직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입니다. 1987년 12월16일 13대 대통령에 당선돼 1988년 2월25일 취임했습니다.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1988년 4월26일 13대 총선에서 민정당은 125석에 그쳤습니다. 전체 의석 299석의 절반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참패였습니다. 김대중 총재의 평민당 70석,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59석,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 35석이었습니다. 선거 결과에 낙담한 노태우 대통령은 회고록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선거 결과를 하늘의 뜻으로 알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대통령 선거에 임하면서 선언한 ‘3김 시대의 종말’을 아직은 하늘이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집권당 일변도의 정치 시대는 지나가고 여야 동반자 시대가 도래했으므로 여야 협조체제가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부단히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인내와 관용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런 기본자세를 갖지 않고서는 역사를 진전시킬 수 없다’고 마음을 정리했다.”

실제로 13대 전반기 국회는 ‘정치가 살아 있는 시대’였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야당 총재들과 만나 대화하고 타협했습니다.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여소야대 정국이라 해서 야당이 독주하는 것은 아니다. 야당은 철저히 국민의 뜻을 헤아려야 했다. 국정의 책임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법안이 여야의 합의로 처리되었기에 어느 때보다 만장일치가 많았다. 여야는 원활한 국회 운영을 위해 5자 회담을 자주 열었다. 여당에서는 대통령과 대표위원, 야당에서는 3당의 총재가 참석했다. 각 당의 입장은 5자 회담에서 조율되었다.”

이 시기에 5공 청산 청문회, 가족법 개정, 지방자치제 부활, 노태우 대통령 중간평가 유보 등 굵직한 정치적 타협이 이뤄졌습니다.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1990년 1월 3당 합당으로 여소야대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실 ‘받아적기 비서’들만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노태우 대통령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왜 못 하는 것일까요? 이유가 뭘까요?

첫째, 정당 내부 구조의 차이 때문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민정당 총재였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인 동시에 제왕적 총재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일 수는 있어도, 제왕적 총재는 아닙니다.

둘째, 리더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군 출신이지만 공감형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청와대 참모나 장관들의 의견을 두루 수렴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눈치를 심하게 보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반면에 윤 대통령은 거침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확신합니다. 독선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혼자 내립니다. 독단입니다. 혼자 열심히 일합니다. 독주입니다.

김대기 비서실장이나 이진복 정무수석은 대통령실 1급 참모들인데도 정무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대통령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고 그대로 이행하기에 급급한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비서에 불과하다는 의미입니다. 큰일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하루 앞둔 5월9일 국무회의에서 “집값 급등과 시장 교란을 초래한 과거 정부의 반시장적, 비정상적 정책이 전세 사기의 토양이 됐다”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닌 적의 선의에 기대는 가짜 평화와 마찬가지로, 범죄자의 선의에 기대는 감시 적발 시스템 무력화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를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어버렸다”고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러고도 성에 안 찼는지 다음날에도 “지난 대선의 민심은 불공정과 비상식 등을 바로잡으라는 것이었다”며 “북한의 선의에만 기대는 안보, 반시장적, 비정상적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라고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심지어 5월31일 공개한 ‘영상으로 보는 1주년 사진집’도 “‘무너져 내린 대한민국’에서 ‘바로 서는 대한민국’으로의 1년” “파탄 난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무너진 한미동맹을 복원하고” 등 전임자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습니다.

대통령실 누리집 화면 갈무리
대통령실 누리집 화면 갈무리

윤 대통령은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요? 국정 성과가 부실한 데 대한 변명일까요? 총선을 겨냥한 보수 지지층 결집용일까요? 아니면 자신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발탁해서 결과적으로 대통령까지 만들어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콤플렉스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야당 탓만 하고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려는 것일까요? 도대체 무슨 궁리를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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