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오는 21일 김영호(63)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연다. 김 후보자는 지명 발표 뒤 기자들과 만나 “대북정책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통일부는 앞으로 원칙 있는, 대단히 가치 지향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남북 합의들을 선별적으로 고려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자의 발언들은 큰 폭의 정책 변화를 예고했다. 어떤 변화일까? 대학교수인 김 후보자가 저서와 언론 기고, 유튜브 방송, 보수단체인 ‘한국자유회의’ 활동 등을 통해 그동안 밝혀온 ‘정책 의견’은 변화를 추측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는 여러 활동에서 “북한은 적”이어서 “남북관계는 적대관계”이며, 한국사회는 “자유민주의 세력 대 전체주의 세력의 대결”의 장이라 “남한과 북한의 ‘전체주의파’ 모두와 맞서 싸워나가겠다”는 논리를 펴왔다. 이데올로기 전사를 자임해온 것이다.
■ “북한은 적”
김 후보자는 저서 <미중 패권전쟁과 위기의 대한민국>에서 “북한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실존적 적”이라 규정했다. “남북관계는 적대관계”이며 “북한은 전체주의라 여하한 유화정책도 통용될 수 없는 상대”(<한국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라고도 했다. 남북관계는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적대관계’이기에, 북한과의 대화·협력·공존 모색은 본질을 가리는 ‘사기극’이라는 논리를 편 것이다.
이는 “평화적 통일정책 수립·추진”을 규정한 헌법 4조, 북한을 “반국가단체이자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 보는 헌법 최고 해석 기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평결·판결과 충돌한다. 통일장관 후보자의 북한 인식이 ‘반헌법적’인 셈이다.
■ “북핵 해결책은 북한 파괴”
김 후보자는 지난 2019년 2월17일 보수 인터넷 매체 <펜앤드마이크> 기고에서 “북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북한 전체주의체제의 파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다섯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 북-미 제네바기본합의와 6자회담 ‘9·19공동성명’ 등의 존재 의의를 전면 부정하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그한테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은 “북한의 선전과 선동에 완전히 놀아난 것”(<펜앤드마이크> 2019년 4월18일 기고)이다.
이런 인식에 비춰보면 김 후보자에게 통일은 북한 체체의 붕괴다. 그는 2019년 4월18일 <펜앤드마이크> 기고에서 “김정은 정권이 타도되고 북한 자유화가 이뤄져 남북한 정치체제가 ‘1체제’가 됐을 때 통일의 길이 비로소 열리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18년 펴낸 단행본 <한국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에서 “낭만적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남북 화해 추구라는) ‘김구 패턴’은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체제 사이의 실존적 적대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책에서 김 후보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한국이 낳은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추어올리며, 김구 선생은 남북의 적대성을 은폐하는 ‘방해꾼’이라는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 “남북 ‘전체주의파’와 맞서 싸울 것”
김 후보자는 한국의 진보 세력을 “대한민국의 근대화의 성취를 부인하고 북한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시대착오적인 반동”(한국자유회의 창립취지문)이라고 했다. 그는 ‘보수 대 진보’는 “허구적 도식”이라고 주장하며 본질은 “자유민주주의 세력 대 전체주의 세력”의 대결이라고 규정했다.
김 후보자는 2018년 6월17일 <펜앤드마이크> 기고에서 2016~2017년 촛불집회를 주도한 이들은 “반(反) 대한민국 세력”이었다면서 “헌재의 대통령 탄핵 결정은 체제 전복세력에게 붉은 카펫을 깔아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한국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에서는 “촛불 든 국회의원들의 행위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고 전체주의에 동조하는 결과”를 낳았다고도 했다. 입법부와 사법부를 싸잡아 ‘(결과적) 반체제’로 매도한 것이다.
이런 인식은 김 후보자가 한국자유회의 발기인으로 나서 “북한 정권의 ‘통일전선전략’을 추종하는 전체주의적 전복세력에 맞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맥락과 이어진다. 김 후보자는 발언의 ‘진의’를 따진 국회의원들의 서면 질의에 “표현에 다소 거친 부분도 있었다”며 “장관으로 일하게 되면, 공직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언행에 더 신중을 기하겠다”고 답했다.
■ ‘친구’ 아니면 ‘적’
김 후보자의 극단적 사고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 그는 ‘정치’를 “친구와 적을 분명히 구분짓는 것”(<펜앤드마이크> 2018년 9월13일 기고)이라 여긴다. 이는 독일 정치철학자 카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은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슈미트는 반유대주의자이자 나치당원으로 나치 이념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나치 ‘계관 법학자’다.
슈미트는 1934년 히틀러 세력이 반히틀러 정치인들을 다수 살해한 폭력(‘장검의 밤’)을 “가장 고결한 행정적 정의”라 추어올린 대표적인 ‘반자유주의 사상가’다. ‘자유민주주의’가 “한국인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주장하는 김 후보자의 사상의 뿌리가 가장 위험한 ‘반자유주의자’인 나치당원 슈미트라는 사실은 깊이 새겨볼 지점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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