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인천공항공사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 비공개 자리에서 국무위원들에게 “당당하게 대응하라” “공격에도 움츠러들지 말고 싸워달라”는 당부 메시지를 남긴 뒤, 정치권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무위원들이 당당하게 싸워야 할 대상은 야당, 언론, 시민단체 등이다. 전직 대통령의 부친을 들먹이며 이념전을 이어가고(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어떻게 정부가 얘기하는데… (중략) 기본적인 예의가 없으신 것”(한덕수 국무총리)이라며 야당 의원에게 발끈하고, 대선 기간 중 의문점이 적지 않던 언론 보도 내용의 전말을 파헤치겠다며 ‘특별수사팀’을 꾸리는 등 볼썽사나운 사건들이 매일 추가된다.
여야가 맞붙는 곳에서도 공세 수위가 올라갔다. 여당은 법안 통과로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고, 야당은 정부·여당을 견제하며 대안을 제시할 줄 기대했건만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쓰레기” “무뢰배” 같은 거친 단어들뿐이다. 국민 통합 책무를 가진 대통령이 나서서 “싸워달라”고 지시하니 누가 먼저 반기를 들 수 있을까. 여당은 대통령 기조에 발맞추기 위해, 야당은 그에 맞서기 위해 더 자주, 격정적으로 분노할 뿐이다. 용산과 여의도엔 성난 사람들로 그득하다.
정부·여당이 야당과 협치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대통령실이 이번 정기 국회 중점 과제로 정한 △공정채용법(고용세습·노조원 특혜채용 근절) △교원지위법(교권 보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 회계 공시) △우주항공청 설치법은 모두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합의해야 통과될 수 있다. 정부가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 또한 민주당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은 어떻게 정부안을 관철할지를 고민하기보다 ‘야당이 발목 잡는다’는 프레임만 부각하려는 모양새다.
통상 행정부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할 땐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시정연설을 한다. 올해도 이변이 없는 한, 윤 대통령은 오는 10월 국회를 찾아 정부의 내년도 국정 운영 기조를 밝히고 국정 운영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해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과 10월, 두차례 시정연설에 나선 바 있지만 지난해 10월 연설은 민주당 소속 의원 전원 보이콧으로 반쪽짜리가 됐다. 이번에도 정상적인 시정연설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하기 쉽지 않다. 윤 대통령이 여소야대와 극단적 양극화 정치만 탓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더탐사’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입당 직전인 2021년 7월 국민의힘 관계자와 통화한 내용을 공개했다. “저는 대통령도, 저는 그런 자리 자체가 귀찮습니다, 솔직한 얘기가. 그러나 이거는 어쨌든 엎어줘야 되고… 그리고 국힘에 이걸 할 놈이 없어” 같은 날것의 소리였다. “그때 제가 들어갔으면 최재형이도 못 들어오고 국힘의 101명 중에 80명은 앞에다 줄을 세웠어”, “개판 치면은 당 완전히 뽀개버리고”, “국힘의 지도부 다 소환해. 바꿔버려. 전부”라는 표현에선 지난해 ‘내부 총질’ 문자 사태와 용산만 쳐다보는 당 지도부에 따라붙는 ‘윤아일체’라는 비아냥이 겹쳐진다. 과장 섞인 발언이었어도 정치권을 바라보던 그 시각은 여전하다. 여당도 ‘졸로 보는’ 제왕적 대통령에게 야당·의회 존중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겠다.
김미나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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