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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보수+검사 ‘실패한 이종교배’…정권만 가져오고 기반 무너진다

등록 2023-09-24 07:30수정 2023-09-24 13:43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99
경험·가치·명분 약한 ‘윤 검사’ 발탁
보수 혁신 원동력 ‘개혁·실용’ 실종
“이재명보다 낫다” 최후 방어 논리
‘이념전쟁’ 열올리며 분열·파국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2월 전남 여수엑스포역에 도착해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2월 전남 여수엑스포역에 도착해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모름지기 큰 정치인은 가치의 실현이라는 명분과 권력을 쥐려는 개인적 욕망이 잘 조화를 이룬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대체로 그런 인물들이었습니다.

훌륭한 가치와 명분을 가지고 있어도 권력욕이 약한 사람은 그 가치와 명분을 실현할 기회를 잡지 못합니다. 역대 대통령 후보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치와 명분이 허약한 사람이 우연히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요?

윤석열 대통령은 불의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정의감과 불굴의 전투력을 갖춘 검사였습니다. 자신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에게조차 굽히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0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한 부천만화축제에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으로 전시됐던 고교생 작가의 풍자 카툰 ‘윤석열차’.
지난해 10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한 부천만화축제에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으로 전시됐던 고교생 작가의 풍자 카툰 ‘윤석열차’.

정권 탈환이 절박했던 이른바 보수 세력이 그를 대선주자로 발탁해서 대통령 자리에 밀어 올렸습니다. 김대중 조선일보 칼럼니스트가 표현한 대로 ‘어쩌다 대통령’입니다. 윤 대통령 자신도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최근 더탐사가 보도한 녹취록을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출마 선언 직후 2021년 7월 국민의힘 관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정권 교체하려고 나온 사람이지, 대통령 하려고 나온 사람이 아니다. 저는 대통령도, 저는 그런 자리 자체가 저한테는 귀찮다. 솔직한 얘기가. 그러나 어쨌든 이거는 엎어줘야 되고, 그리고 국힘에 이걸 할 놈이 없어.”

쉽게 말해서 승부 근성이 있고 권력욕도 매우 강한데, 왜 대통령을 해야 하는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는 공백 상태에서 덜컥 대선에 출마했고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그런 상태를 유지했으면 그냥 좀 무능한 대통령 정도로 역사에 남았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윤 대통령은 그 커다란 공백을 ‘늦깎이 뉴라이트 의식화’로 채운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공동체를 분열과 위기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 뒤 중단해야 했던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진 것일까요? 대통령에게 필요한 경험과 가치와 명분을 갖추지 못한 ‘윤석열 검사’가 도대체 어떻게 해서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른바 보수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의 후예입니다. 독재는 민주주의를 압살하려 했지만, 매번 시민혁명으로 무너졌습니다. 그런데도 보수가 명맥을 이을 수 있었던 것은 1990년 3당 합당 덕분이었습니다. ‘노태우의 민정계’는 쿠데타 세력이었고 ‘김영삼의 민주계’는 민주화 세력이었습니다. 쿠데타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이종교배로 민자당은 재집권에 성공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초 강력한 개혁으로 보수의 기반을 넓혔습니다. 1996년 이재오 홍준표 김무성 이회창 황우여 등 새로운 인물들을 신한국당에 대거 끌어들였습니다. 14대 전국구 의원이었던 이명박 의원도 서울 종로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보수는 1997년 외환위기로 정권을 잃었습니다. 이번에는 이회창 총재가 한나라당에 유승민 오세훈 원희룡 등 새 인물들을 끌어들였습니다. 1998년 4월 재·보선에서 당선된 박근혜 의원도 있었습니다.

‘민주계’와 ‘이회창계’는 보수의 기존 인맥과 전혀 다른 정치인들이었습니다. 민주적이었고, 개혁적이었고, 무엇보다 실력이 있었습니다. ‘합리적 보수’, ‘개혁 보수’, ‘실용 보수’였습니다.

10년의 와신상담 기간에 민주계와 이회창계는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로 재편됐습니다. 이들이 보수의 내부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두대의 기관차였습니다. 이때의 혁신으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연속 집권이 가능했습니다.

한나라당에서 이명박 정권을 만드는 과정은 기존 보수 정치인과 성공한 기업인의 유전자를 섞는 이종교배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는 또 여기에 박정희 대통령의 근대화 유전자를 추가하는 실험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빈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조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빈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조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의 이종교배가 그런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은 그래도 상당 기간 정치 경험을 쌓은 정치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재선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5선 국회의원과 대표,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습니다.

이종교배 실험에는 가끔 설계자의 의도와 달리 열등한 유전자가 발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독재의 유전자를 갖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국정농단 사태로 몰락한 게 그런 경우입니다.

보수는 여기서 이종교배 실험을 중단했어야 합니다. 정당과 국회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한 정치인을 대선후보로 내세워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뤘어야 합니다.

윤 대통령 극우 질주…증오·분노가 일상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 일각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을 보수의 대선후보로 선출하는 파격적 이종교배를 시도했습니다. ‘윤석열 검사’가 가진 정의와 공정의 유전자가 보수의 가치와 일치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진짜 이유는 문재인 정부를 향한 복수심에 눈이 멀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험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를 서른다섯번 외쳤을 때 보수는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윤석열 대통령의 문제가 차례차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취임 1년4개월이 지나도록 야당 대표와 만나지 않았습니다. 야당을 ‘공산 전체주의’, ‘반국가 세력’으로 몰았습니다. 강직하게 임무를 수행한 해병대 수사단장을 해임하고 항명죄로 입건했습니다. 한-일 관계 개선을 명분으로 한·미·일 준동맹 체계를 구축했고, 그 바람에 한-중 관계, 한-러 관계가 악화하고 있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구청장직을 상실한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특별사면해 다시 출마시켰습니다. 대선 때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보도한 언론사 기자들을 형사처분하겠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몰상식의 연속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조금씩 다지고 넓혀놓았던 보수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보수 혁신과 재집권의 원동력이었던 ‘합리적 보수’, ‘개혁 보수’, ‘실용 보수’와는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 대통령 직무 평가와 정당 지지도가 그 증거입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2024년 4월10일 22대 총선은 국민의힘이 패배할 것입니다. 2026년 6월3일 지방선거, 2027년 3월3일 대통령 선거도 패배할 것입니다.

선거의 승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극우 질주로 민주당도 혁신을 거부하고 퇴행할 핑계가 많아졌습니다. 적대적 공존입니다. 증오와 분노가 일상을 지배하고 정치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병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밀어 올린 것은 결국 보수 세력의 큰 실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넘쳐납니다. “그래도 이재명이 대통령 된 것보다는 낫다”는 게 최후의 방어 논리입니다. 그 정도 허술한 방패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정의로운 전쟁에도 지치면 돌아서”

강천석 조선일보 고문이 지난 9일치 신문에 ‘‘윤석열 보유 정당’과 ‘이재명 보유 정당’’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내용의 대부분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비판하는 것이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는 여권을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지금 여권이 걷는 길은 정말 다수(多數)가 되고자 하는 길인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은 한 번도 정치 노선에서 순혈주의(純血主義)를 주창한 적이 없다. 두 대통령은 자연에서처럼 정치에서도 잡종(雜種)이 순종(純種)보다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그 바탕에 나라를 세우고 부강(富强)하게 만들었다. 역사는 독일과 일본이 순혈(純血)로 기우는 순간 나라도 기울었다는 사실을 기록에 남겼다. 정의로운 전쟁도 끝이 보이지 않으면 국민을 지치게 한다. 지친 국민은 돌아서는 법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최훈 중앙일보 주필이 지난 18일치 신문에 ‘‘양날의 칼’ 대통령의 이념전쟁’이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대통령 측근이 전달한 윤 대통령의 ‘워딩’을 소개했습니다.

“이념 발언은 다 잘 먹고 잘살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뚜렷해지지 않으면 잘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민생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전제로 국가 정체성을 대내외적으로 한번 명확히 하고 가자는 게 의도였다.”

최훈 주필은 다행이라고 평가했지만,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나라 전체를 이념 전쟁의 구덩이로 몰아넣은 뒤 그게 아니라고 구차한 변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보수 신문의 논객들이 나섰으니 윤 대통령이 움찔할까요?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달려가던 발길을 잠시 멈출까요?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해서 대통령 자리에 오른 사람입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고 황소처럼 밀고 나간 것이 그의 성공 방정식입니다. 이 세상에 자신이 성공한 방식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윤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소신 행보 때문에 대한민국 공동체가 점점 더 분열하고 파국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가 윤 대통령의 폭주를 멈춰 세울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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