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월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하면 된다’는 기치로 우리 국민을 하나로 모아, 이 나라의 산업화를 강력히 추진하셨다”고 했습니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산업화의 위업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을 추모하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그분의 혜안과 결단과 용기를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괴이한 장면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를 명분으로 국민의 자유를 억압한 독재자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은 전체주의 리더십입니다. 윤 대통령은 자유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서른다섯번이나 외쳤습니다. ‘하면 된다’와 ‘자유’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역대 대통령은 누구나 ‘공과 과’가 있습니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해야 합니다. 윤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든 말든 그건 윤 대통령 마음입니다.
그러나 꼭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박정희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시대의 망령이 아직도 우리의 머리 위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지난 10월4일 서울중앙지검 출입 기자들에게 이런 알림이 전달됐습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알림]
* 공개되는 범죄사실은 재판에 의하여 확정된 사실이 아님을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서울중앙지검은 1976년 당시 대통령긴급조치 9호를 위반하여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였다는 혐의로 유죄 판결이 확정된 피고인에 대한 재심사건 공판에서,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긴급조치 9호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무효라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오늘(10.4.) 무죄를 구형하였고, 서울중앙지법에서 검찰 구형과 같이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끝]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조아무개씨가 무려 47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는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0월18일 연합뉴스는 이런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부마항쟁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 손배소 항소심 승소 확정
재판부 “불법 체포 구금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 명백”
(창원=연합뉴스) 이준영 기자 =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긴급조치 9호 위반 등 혐의로 불법 구금과 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제1민사부(조광국 부장판사)는 지난달 15일 부마항쟁 피해자 A씨 등 1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원고에게 위자료(1천만∼2천만원)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원고와 피고 모두 받아들이면서 지난 5일 확정됐다. A씨 등은 19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마산에서 시위하다 붙잡혀 최장 22일 동안 불법 구금된 상태로 구타 등을 당했다.(이하 생략)
긴급조치는 박정희 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에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긴급조치 민형사 재판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기가 막히지만 그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 육군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1963년과 1967년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1969년 ‘3선 개헌’을 했고 1971년 또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1972년 10월17일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습니다. ‘10월 유신’이었습니다.
정부의 대대적인 독려와 감시 속에 91.9% 투표율과 91.5% 찬성률로 유신헌법이 탄생했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제로 바뀌었습니다. 임기는 6년으로 연임 제한이 없어졌습니다. 국회 3분의 1을 대통령이 사실상 임명하는 유신정우회 의원들로 채웠습니다.
유신헌법 53조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할 수 있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무시무시하지요?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1974년 1월부터 1975년 5월까지 모두 아홉차례 긴급조치를 발동했습니다. 긴급조치 9호는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 등을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할 수 있도록 하고 1년 이상 유기 징역에 처하도록 한 것입니다.
긴급조치 9호로 구속된 사람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4년 동안 1천명이 넘었습니다.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했던 대학생이나 종교계 인사들, 술자리에서 정부를 비난한 평범한 시민 등이었습니다. 중앙정보부나 경찰에 끌려가 두들겨 맞고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독재의 하수인이었던 검찰과 법원은 정권이 시키는 대로 기소하고 판결했습니다.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정권이 몇 차례 바뀌고 나서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2010년 대법원은 긴급조치 1호 위반 재심 사건에서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2013년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습니다. 이후 많은 사람이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습니다. 대법원은 2015년 3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로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국민 개개인에 대한 민사상 불법 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수많은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여기에 가로막혀 소송에서 패소했습니다. 대법원의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사법 거래’를 한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대법원장이 바뀐 뒤 2022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 9호 위반 수사 재판 피해자와 가족에 국가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7년5개월 전 ‘양승태 대법원’의 판례를 변경한 것입니다. 만시지탄이요, 사필귀정이었습니다. 앞에서 연합뉴스 기사로 소개한 부마항쟁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의 승소는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이뤄진 것입니다.
그러나 중대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 변경 이전에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마무리되어 패소가 확정된 사람들은 피해를 배상받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현행법에 의하면 민사 재심을 청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를 ‘잘’ 만나서 재판이 지연된 사람들은 구제받고, 재판부를 ‘잘못’ 만나서 재판이 빨리 끝난 사람들은 구제받지 못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억울하게 구제의 길이 막힌 사람은 적게는 180명에서 많게는 600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대표발의한 ‘긴급조치 피해자 민사재심 등에 관한 특별법안’은 바로 이런 피해자들을 입법으로 구제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입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아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조차 안 되고 있습니다. 법사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2022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안철상 대법관은 다수 의견의 결론에 동의하면서도 ‘별개 의견’을 붙였습니다.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판사가 쓴 판결문이 아니라 마치 철학자나 역사학자가 쓴 수필처럼 아름답습니다.
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10월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판결에 따라 비로소 구제받을 수 있게 된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런데 이 사건과 같은 사안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을 받음으로써 구제받지 못한 다수의 피해자들도 있다. 이들은 실제로 더 크고 심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판결의 기판력에 따라 재판상 구제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또 다른 형평의 문제를 일으킨다. ‘과거는 여는 것이 아니라 닫는 것이다. 여는 것은 미래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미래를 아름답게 열기 위해서는 과거를 제대로 닫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이 부여한 사법의 역할은 사회의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고 법적 평화를 통해 사회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사법의 저울로 과거를 제대로 닫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 여기에 입법적 해결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긴급조치 제9호는 잘못된 입법이고, 잘못된 입법으로 인한 국가배상 문제는 입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다.”
어떻습니까?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논리가 명확합니다. 국회가 ‘긴급조치 피해자 민사재심 특별법’을 제정해서 박정희 시대의 어두운 과거를 제대로 청산해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위업’을 칭송하는 일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