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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식량안보 파수꾼” “생태·문화 보루” 팽팽

등록 2006-04-10 20:15수정 2006-04-11 09:20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1부 대안을 향한 성찰 ⑨ 농업, 벼랑에 몰린 오래된 미래
농업 핵심가치

농업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간단하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농민들은 크게 분개한다. ‘제대로 대접도 않고 이용만 하더니 끝내 버리겠다는 거냐.’ 생태주의자들은 그런 농민들에게 말한다. ‘친환경농업 외에는 한국 농업의 미래가 없다.’ 다시 농민들이 답한다. ‘현실을 모르는 배부른 소리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논란 속에 한국 농업은 벼랑 끝으로 떠내려 가고 있다. 그 한가운데서 대다수 시민들은 농촌과 자연에 대한 향수, 안전한 우리 먹거리에 대한 욕구, 값싼 외국농산물에 눈길가게 하는 생활고 등에 둘러싸여 어쩔 줄 몰라 한다. 〈한겨레〉 선진대안포럼은 농민운동 관계자, 농업경제학자, 생태운동가 등을 한자리에 불러 희망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권영근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장, 박진도 충남대 교수, 장상환 경상대 교수,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윤석원 중앙대 교수, 윤형근 모심과살림 선임연구위원, 전기환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등이 지난달 25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와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서면으로 의견을 전했다. 토론 전문은 〈인터넷 한겨레〉(www.hani.co.kr)에서 볼 수 있다.

농민운동가-생태주의자 현안마다 견해차

한국 농업이 붕괴 상태에 놓여 있다는 데,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성장제일주의를 추구한 독재정부·민주화정부 모두가 그 주범이라는 데도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농업·농촌·농민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되살려야 하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농민에 대한 연민과 우애의 시선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점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크게 보자면 농민운동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입장과 생태주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입장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참석자들 각자가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한국 농업의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현장이기도 했다.

농촌의 미래를 밝힐 ‘주인’이 누구인지를 묻는 논쟁은 흥미로왔다. 박진도 충남대 교수는 “농촌이 농민만의 공간에 머물러서는 장래가 없다”며 “농민과 비농민이 함께 어울리면서 국민 전체를 위한 삶의 공간으로 발전시키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농민중심 정책입안 중요…농가 생계문제 해결 절실”
“생태적 전환이 지름길…농촌을 국민전체 공간으로”

이 구상은 농업 및 농촌의 핵심기능에 대한 판단과 맞물려 있다. 식량생산 중심으로 일원화된 농촌을 “식품공급, 일자리 제공, 국토·환경보전, 전통·문화 계승 등 다원적 가치를 지닌 공간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농촌의 삶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농촌에 돌아올 것”이라는 게 박 교수의 분석이었다.

전기환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생각이 달랐다. “농촌이 도시민의 주거공간으로 변하는 것이 농민들에게 과연 어떤 도움이 되는가”라며 “농가 소득을 보전하면서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농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원 중앙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농촌에는 농사를 생업으로 삼는 농민이 살아야 하고 이들이 농촌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고, 장상환 경상대 교수도 “도시 자본을 끌어들여 농촌을 활성화하겠다는 건 농업 자체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권영근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장은 “자본가·도시민의 관점이 아니라 농촌주민의 관점에서 농촌 정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농민을 최우선에 두고 농촌 문제를 고민하려는 이런 시각은 농업의 핵심기능이 식량생산에 있다는 판단을 깔고 있다. 전 사무총장은 “농업의 근원적 가치는 누가 뭐래도 국민의 식량을 생산하는 것”이라며 “자국민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데, (2·3차 산업 등) 다른 것으로 농민이 돈을 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장상환 교수도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식량문제이며, 낮은 식량자급률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박진도 교수는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농민들에게 식량생산만을 강요해선 안된다. 한국농업은 쌀에 지나치게 의존한 왜곡된 생산구조다. 곡물 이외의 고부가가치 농업을 함께 하도록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과거에는 농업의 주된 역할이 값싼 식량의 안정적 공급이었지만 오늘날 농업·농촌의 역할은 다면적인 것으로 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생태주의적 입장을 가진 참석자들은 이 논란 자체를 뛰어넘으려 했다. 박승옥 대표는 “한국의 농업이 석유·화학농업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 농촌에 2·3차 산업을 도입하거나 국가가 농민들의 소득을 보전한다고 해도 농업의 위기는 극복되지 않을 것”이라며 “자연순환형 농업으로 전환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도 “한국 농업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비싼 돈을 주고 이런 ‘우리 것’을 먹을 이유가 없다”며 “개방에 맞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공업적 농업의 문제를 극복하는 농업의 생태적 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박진도 교수는 “환경이 파괴되건 말건 우선 먹고 살아야겠다는 농민들의 절박한 생존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해야 자연순환형 농업이 설득력있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원 교수도 “친환경생태농업이 좋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가난한 농민들에게 이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 실현가능한가”라고 물었다. 이번 토론의 가장 큰 줄기이기도 한 이 대립은 결국 농민운동의 진로를 둘러싼 논란으로 옮겨갔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농민 몰락하는데… 농협은 뭐 하는거요…”
신용-경제사업 분리 등 농협 개혁 한목소리
“전농이 주체되야”…개발주의 농업기구 폐지 주장도

논쟁 가운데서도 참석자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이 있었다. 농협 개혁이다.

박진도 교수는 “일본 농업을 지킨 힘이 기본적으로 협동조합에 있었던 것처럼, 협동조합을 떠나서 한국 농업의 활로를 찾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를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의 개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성태 교수는 농협·농촌공사의 개혁을 함께 언급했다. 농협에 대해선 “농업은 몰락하고 농민은 죽는데 농협이 배를 불린다면 대단히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물었다. “농민을 위한 금융기관이라는 성격을 오래전에 잃어버린 농협을 크게 개혁해서 농민의 자생력을 높일 수 있는 기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농촌공사와 관련해서는 “문전옥답이 없어지는 건 방치하고 새만금이라는 천혜의 자연자원을 없애서 농지를 확보한다는 터무니 없는 계획을 추진하는 개발주의 농업기구를 없애야 농업의 생태적 전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장상환 교수는 농협 개혁의 실질적 주체가 농민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에 대해 전농이 소흘했다고 짚었다. “전농이 농민회 조직화에만 머물지 말고 농협을 본격적으로 개혁하는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며 “대안적 유통모델을 농민 스스로 만드는 등의 노력을 해야 기존의 농협도 변화시킬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전농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농협을 ‘외부로부터’ 바꿔나가자는 주문이었다.

전기환 사무총장은 “전농 역시 그런 (독자적 유통모델 마련) 시도를 했는데 번번이 지역 농협의 견제에 밀려 견뎌내질 못했다”며 “우리도 농협 개혁이 절실한 과제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토론회에서 농업·농촌 문제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당연히 농협의 개혁을 통해 이루려는 가치도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현재의 농협이 농민들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박진도 교수)라는 점에서는 인식이 일치했다. 한국 농업의 활로를 어떤 식으로 개척하건 농협 개혁은 반드시 거쳐야할 길이라는 이야기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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