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농업, 벼랑끝에 몰린 오래된 미래’를 주제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 왼쪽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진도 충남대 교수,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윤형근 모심과살림 선임연구위원, 장상환 경상대 교수, 권영근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장, 전기환 전농 사무총장, 윤석원 중앙대 교수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1부 대안을 향한 성찰 ⑨ 농업, 벼랑에 몰린 오래된 미래
농민운동 가야할 길
생태론자 유기농 제안에 현실론 내세워 반박
시민단체·노조등과 연대해 활로 모색엔 공감 진보세력 내부에서 쉬쉬 하는 비밀이 있다. 농민운동가와 환경운동가는 좀처럼 마주 앉지 않는다. 함께 앉더라도 쉽게 말을 섞지 않는다. 사사건건 대립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연, 농촌, 농업의 가치를 바탕으로 삼는 두 집단이 서로 긴장하는 현실은 ‘외부자’가 보기엔 기묘한 것이다. 〈한겨레〉 선진대안포럼은 이 문제를 푸는 게, 한국 농업의 활로를 찾는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이 먼저 쓴소리를 했다. “앞으로 한국 농업을 어떻게 끌고갈 것인지 구체적인 고민이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미래 전망을 내놓지 못해 국민적 지지에서 멀어지고 있는 농민운동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윤형근 연구위원은 농민운동의 전환 방향으로 생태유기농업을 제시했다. “취학전 아동의 25%가 천식에 걸리고 40%가 아토피를 앓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민적 관심사가 농민운동을 둘러싼 여러 이슈 중의 핵심”이라며 “식품안전과 생태보전 등 다원적 가치를 설득하면서 사회적 공감대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품안전·생태보존 관심 기울여야 반론이 잇따랐다. 박진도 교수는 “전체 농가의 0.05% 수준인 유기농가조차 이를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원 교수도 “그 좋은 생태농업을 왜 농민들이 하지 않는지 먼저 헤아려야 한다”며 “농가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전해주는 방안이 마련돼야 생태농업의 실현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직은 농민운동의 주된 초점이 농가소득 보전 등 농정변화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박승옥 대표가 되받아 비판했다. “농민운동이 눈 앞의 경제적 이익만 추구한다면, 의사나 약사처럼 이익단체들이 걷는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농민운동의 궁극적 목표는 더 많은 소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근본을 되묻는 가치 추구 운동이다.” 논란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 취지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다만 박승옥 대표는 “(투쟁이 성공해) 농업분야가 세계화의 무풍지대 안에서 보호된다고 해도 한국 농업이 풍요를 구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몽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진도 교수도 “농민단체가 원하는대로 농산물 수입이 더이상 확대되지 않으면 과연 농업·농촌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라고 물었다. 농민운동의 중심축이 옮겨가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농업개방 대응도 온도차 뚜렷 반면 전기환 사무총장은 “WTO-FTA 체제 아래 한국 농업이 살아갈 가망은 아예 없다”며 “이를 대세로 보고 (대안을) 찾자고 하니 (환경운동 등과) 서로 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농업개방을 대세로 인정하고 나면 한국 농업의 미래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설명이다. 쟁점에 대한 합의는 쉽지 않았지만, 농민운동과 생태주의, 농민과 시민의 연대에 대한 필요성을 서로 공감한 것은 적지 않은 성과였다. 박진도 교수는 “농민운동이 과격성을 띠면서 국민적 지지기반을 잃어가고 있다”며 “전국 단위의 투쟁에만 집중하지 말고, 지역 농업 환경을 변화시켜 이 토대 위에서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상환 교수도 “농민운동은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한데, 정작 국민들은 우리 농산물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지 불안해 한다”며 “친환경농업을 통해 이같은 국민적 요구를 농민운동이 받아들이는 게 관건”이라고 짚었다. 전기환 사무총장도 ‘연대’의 절박함을 수긍했다. “농업 문제의 해결은 농민만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다. (농민운동 외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이를 받아안을 힘이 전농에게 있다. 그런데 (시민운동 진영이) 전농한테 직접 제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한국판 ‘농업돕기운동’ 등 구체제안도 이제부터는 농민운동이 적극적으로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를 제안하겠다.” 오해를 풀고 이제부터라도 솔직하게 소통하자는 말이다. 구체적 제안도 나왔다. 윤형근 선임연구원은 “학교 급식 문제를 통해 도시민과 농민이 연대의 틀을 짜자”고 말했다. 홍성태 교수는 198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농업돕기운동(Farm Aid)’을 거론하며 “문화인들이 참가하는 한국판 ‘팜 에이드’를 열자”고 말했다. “농업을 살리기 위한 문화운동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이를 통해 농민들도 더욱 넓은 눈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시민단체·노조등과 연대해 활로 모색엔 공감 진보세력 내부에서 쉬쉬 하는 비밀이 있다. 농민운동가와 환경운동가는 좀처럼 마주 앉지 않는다. 함께 앉더라도 쉽게 말을 섞지 않는다. 사사건건 대립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연, 농촌, 농업의 가치를 바탕으로 삼는 두 집단이 서로 긴장하는 현실은 ‘외부자’가 보기엔 기묘한 것이다. 〈한겨레〉 선진대안포럼은 이 문제를 푸는 게, 한국 농업의 활로를 찾는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이 먼저 쓴소리를 했다. “앞으로 한국 농업을 어떻게 끌고갈 것인지 구체적인 고민이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미래 전망을 내놓지 못해 국민적 지지에서 멀어지고 있는 농민운동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윤형근 연구위원은 농민운동의 전환 방향으로 생태유기농업을 제시했다. “취학전 아동의 25%가 천식에 걸리고 40%가 아토피를 앓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민적 관심사가 농민운동을 둘러싼 여러 이슈 중의 핵심”이라며 “식품안전과 생태보전 등 다원적 가치를 설득하면서 사회적 공감대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품안전·생태보존 관심 기울여야 반론이 잇따랐다. 박진도 교수는 “전체 농가의 0.05% 수준인 유기농가조차 이를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원 교수도 “그 좋은 생태농업을 왜 농민들이 하지 않는지 먼저 헤아려야 한다”며 “농가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전해주는 방안이 마련돼야 생태농업의 실현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직은 농민운동의 주된 초점이 농가소득 보전 등 농정변화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박승옥 대표가 되받아 비판했다. “농민운동이 눈 앞의 경제적 이익만 추구한다면, 의사나 약사처럼 이익단체들이 걷는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농민운동의 궁극적 목표는 더 많은 소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근본을 되묻는 가치 추구 운동이다.” 논란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 취지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다만 박승옥 대표는 “(투쟁이 성공해) 농업분야가 세계화의 무풍지대 안에서 보호된다고 해도 한국 농업이 풍요를 구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몽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진도 교수도 “농민단체가 원하는대로 농산물 수입이 더이상 확대되지 않으면 과연 농업·농촌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라고 물었다. 농민운동의 중심축이 옮겨가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농업개방 대응도 온도차 뚜렷 반면 전기환 사무총장은 “WTO-FTA 체제 아래 한국 농업이 살아갈 가망은 아예 없다”며 “이를 대세로 보고 (대안을) 찾자고 하니 (환경운동 등과) 서로 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농업개방을 대세로 인정하고 나면 한국 농업의 미래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설명이다. 쟁점에 대한 합의는 쉽지 않았지만, 농민운동과 생태주의, 농민과 시민의 연대에 대한 필요성을 서로 공감한 것은 적지 않은 성과였다. 박진도 교수는 “농민운동이 과격성을 띠면서 국민적 지지기반을 잃어가고 있다”며 “전국 단위의 투쟁에만 집중하지 말고, 지역 농업 환경을 변화시켜 이 토대 위에서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상환 교수도 “농민운동은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한데, 정작 국민들은 우리 농산물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지 불안해 한다”며 “친환경농업을 통해 이같은 국민적 요구를 농민운동이 받아들이는 게 관건”이라고 짚었다. 전기환 사무총장도 ‘연대’의 절박함을 수긍했다. “농업 문제의 해결은 농민만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다. (농민운동 외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이를 받아안을 힘이 전농에게 있다. 그런데 (시민운동 진영이) 전농한테 직접 제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한국판 ‘농업돕기운동’ 등 구체제안도 이제부터는 농민운동이 적극적으로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를 제안하겠다.” 오해를 풀고 이제부터라도 솔직하게 소통하자는 말이다. 구체적 제안도 나왔다. 윤형근 선임연구원은 “학교 급식 문제를 통해 도시민과 농민이 연대의 틀을 짜자”고 말했다. 홍성태 교수는 198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농업돕기운동(Farm Aid)’을 거론하며 “문화인들이 참가하는 한국판 ‘팜 에이드’를 열자”고 말했다. “농업을 살리기 위한 문화운동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이를 통해 농민들도 더욱 넓은 눈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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