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7시간 지나 “경위야 어찌됐든 유감”
홍준표 “진상규명 전 조속히 책임자 문책”
공성진 최고위원도 “용산 철거는 과잉진압”
홍준표 “진상규명 전 조속히 책임자 문책”
공성진 최고위원도 “용산 철거는 과잉진압”
여권 전체가 당혹감에 휩싸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2년차맞이 개각을 단행한 바로 다음날, ‘용산 철거민 참사’라는 대형 악재가 불거진 탓이다.
청와대는 20일 오전 내내 ‘선 진상파악’을 강조하며 말을 아꼈다. 이명박 대통령도 “철저하고 신속한 진상파악”을 지시한 것 외에는 별다른 공식 언급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사고가 난 지 8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 3시30분께야 “경위가 어찌됐든, 이번 사고로 많은 인명피해가 빚어진 것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수준에서 입장을 정리했다. ‘방어적’이었다.
청와대의 태도는 이 대통령이 그동안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이른바 ‘떼법’ 등에 대한 강한 대응을 지시해온 것과 이 사건이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놓고 경찰을 질타할 수도, 옹호할 수도 없는 난감한 처지다. 청와대가 밝힌 ‘경위가 어찌됐든’이라는 말에 그런 고민이 묻어난다. ‘법질서 회복’은 이 대통령의 국정 2년차 주요 기조 가운데 하나였다. 사건의 파장에 따라선 이 대통령의 집권 2년차 국정 드라이브가 출발점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청와대는 우려한다.
그러나 반대로 청와대는 이번 사건이 자칫 ‘제2의 촛불’로 확대될 가능성을 더 크게 우려한다. 가속화하는 경기침체로 서민들의 삶이 점점 어려워지는 가운데, 최근 미네르바 수사, 일제고사 거부 교사 해임, 한국방송(KBS) 기자·피디(PD) 파면 등 강경 일변도의 정부 방침으로 악화된 밑바닥 민심이 더욱 나빠질 가능성 때문이다. 철거민의 성격은 다르지만, 사건의 외형은 마치 1980년대 ‘상계동·목동 철거민 사태’를 연상시키는 것도 곤혹스럽다. 이날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번 사건의 대응과 관련해 “심각한 상황이고, 갈등을 유발시키기보단 위무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쪽으로 대통령한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으로는 2월 ‘입법 전쟁’을 앞두고 정치지형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점도 청와대의 고심거리다. 야당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 원 장관과 김 청장은 국가정보원장과 경찰청장으로 내정돼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개각에 대한 불만이 고조돼, 당청 협조를 자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청와대의 ‘방어적’ 자세와 달리, 한나라당에선 당 지도부와 친이계 의원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는 등 불을 지피고 있다. 개각으로 틈이 벌어진 당청 관계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용산구민회관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와 궤를 같이해 ‘선 진상규명’을 언급했다. 그러나 홍준표 원내대표가 곧바로 “진상규명은 사법적 책임을 물을 때 하는 것이지, 정치적 책임을 물을 때는 진상규명 이전에 조속히 책임자 문책을 해야 한다”고 맞받아 ‘선 진상규명’ 방침을 정면 반박했다. 대표적인 친이계 의원인 공성진 최고위원도 이날 라디오방송에 나와 “과잉진압 여부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고 강성발언을 내뱉었다. 공 최고위원은 이날 한나라당 원외당협위원장 협의회 축사에서는 “용산 철거는 과잉진압”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석에서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이 정도 사안이면 김 청장을 당장 경질해야 한다” “김석기 경찰청장을 자르는 것으로 해결될 차원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 의원은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의 결과”라고도 말했다. 사태의 파장을 한결 강도높게 우려하는 것으로, 이번 사건이 당청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일부 엿보인다.
권태호 신승근 기자 ho@hani.co.kr
권태호 신승근 기자 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