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재개 등을 논의하기 위해 방북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방북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문서도 없이 구두 전달…관계개선 진정성 의구심
조건없이 대화하자면서 천안함 사과 계속 거부
조건없이 대화하자면서 천안함 사과 계속 거부
이명박-김정일 만남 전망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8일 방북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언제든지 만나 모든 주제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용호 외무성 부상을 통해 친서로 보이는 서류를 읽어준 것이어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전달한 메시지는 아니지만, 사실상의 정상회담 제의다.
그러나 정부 반응은 차갑다. 진정성이 담긴 제의로 보기 어렵고, 그렇게 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 핵심 당국자는 “전혀 새로운 내용이 없다”며 “2년 전부터 해온 소리”라고 했다. 남북은 2009년 하반기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사이에 남북정상회담을 협의한 바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김양건 부장을 통해 “이 대통령과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달자가 김 부장에서 카터 전 대통령으로 달라진 점 외엔 김 위원장 메시지가 바뀐 게 없다는 얘기다.
반면에 그 뒤로 정부 태도는 더욱 완강해졌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거치며 이에 대한 북한의 사과 등 책임있는 조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 부분이 정리되지 않고선 정상회담은커녕 북한 핵문제를 다룰 6자회담으로 넘어갈 수도 없다는 태도다.
김 위원장의 이번 메시지에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카터 전 대통령과 함께 방북했던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메시지는 정상회담 제안뿐 아니라 모든 사항에 대해 사전 조건 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사전 조건이 없다는 건 남쪽 또한 천안함·연평도 사과라는 전제를 미리 달지 말고 정상끼리 만나서 천안함 사건이고 연평도 사건이고 같이 논의하자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정부 당국자는 “상황은 달라졌는데 북한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넘어가자며 예전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이미 예고된 바 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6일 카터 전 대통령 방북 직후 이뤄진 브리핑에서 “북한과 우리가 제3자를 통해 얘기해야 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을 통한 북한의 간접적인 남북대화 제의를 공식 제의로 인정하지 않을 뜻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의 메시지 전달 방식 또한 진지한 정상회담 제의로 받아들이기엔 문제투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직 국가수반을 4명이나 초청하고도 김 위원장의 직접 면담 대신 길을 떠난 이들을 다시 불러들인 뒤 서한을 읽어주는 결례를 저질러 스스로 메시지의 격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1994년 카터 방북 때는 김일성 주석이 최고 예우를 하고 진지하게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한 반면에 이번엔 우리 정부가 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번 던져본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정부 태도와 북한의 메시지 전달 형식에 비춰, 이번 정상회담 제의가 뒷심을 받아 제 궤도에 올라서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진지한 의지가 남북 모두에게 필요한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정부 태도와 북한의 메시지 전달 형식에 비춰, 이번 정상회담 제의가 뒷심을 받아 제 궤도에 올라서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진지한 의지가 남북 모두에게 필요한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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